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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폭력, 폭정의 ‘반지성주의’
오피니언 칼럼

[미디어·경제논단] 다수 폭력, 폭정의 ‘반지성주의’

조맹기 서강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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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 말을 강조하기 위해,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사용했다. 과연 윤 대통령이 개인 ‘자유의 무게’를 성찰하고, ‘개체적 자아’를 늘 묵상하고 살았는지…. 그의 지금까지 삶이 다수 폭력, 폭정의 ‘반지성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현대 개념의 자유는 영국인 존 스튜어트 밀(J.S. Mill, 1806)의 ‘자유에 대하여’에서 명료하게 표출됐다. 청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출간 그해인, 1859년 ‘군기권계론(群己權界論, On Liberty)’이다. 청나라에서 온 책이다. 그걸 윤 대통령이 언급했다. 밀은 자유를 “① 내면적 영역에서 사상의 자유 ② 우리 자신의 생활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취미와 자신의 일을 자기가 할 수 있는 자유 ③ 개인과 개인사이의 단결의 자유 등”으로 규정했다.

밀이 그 책을 1859년 출간한 같은 해에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의 비판’이 출간됐다. 마르크스는 1918년 출생이고, 밀은 1806년 태어났다. 밀이 12살 앞선다. 둘은 당시 영국 대영박물관 주변에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에 속했다.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선언’으로 유명세를 탄, 현재 독일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으뜸 좌파의 지식인이었다. 반면 밀은 우파의 거두였다. 둘은 의식적으로 상대를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었지만, 밀은 ‘다수의 폭력, 폭정(the tyranny of the majority)’을 경고하는 의미로 ‘자유에 대하여’를 집필했다. 국내의 경우 1959년 경향신문 ‘여적’의 주요한(朱耀翰) 국회의원이 쓴 ‘다수의 폭정’으로 신문폐간의 아픔을 경험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헌정질서가 무너졌을 때 우리 국민은 가장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촛불집회를 통해, 그리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탄핵이라는 적법절차에 따라, 정부를 교체하고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전 세계가 한국 국민들의 성숙함에 찬탄을 보냈습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요구한 촛불광장의 열망에 우리 정부가 얼마나 부응했는지 숙연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다 이루지 못했더라도,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국민의 열망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촛불의 염원은 여전히 우리의 희망이자 동력으로 피어날 것입니다”라고 했다. 물론 이의 발상은 ‘다수의 폭력, 폭정’이지만, 헌법정신은 아니다.

다수의 폭정은 지난 5년간 일상사였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바른사회시민회의 토론회(5월 25일)에서 “문재인 정부는 경제성장률, 소득5분위 배율, 비정규직 비율, 재정건전성 등에서 낙제에 가깝다”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군중혁명에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의 이론은 “가치 이론에서 상대적 가격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노동의 가치를 생산 커뮤니티 안의 교환 가치에만 한정시켰다. 교환 가치의 역할도 결국 투입된 노동량에 대한 대가가 노동자에게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착취 현상과 소외 현상에 방점이 간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 때문에 프롤레타리아가 봉기해, 폭력의 공산주의 혁명이 반듯이 일어난다고 봤다.

한편 밀은 다르다. 그는 “자본이 축적되면 결국 그것이 고정 자본으로 다시 투자됨으로써 생산량이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대가도 많아진다고 여겼다. 그에게 이익의 발생과 노동자의 정신적, 영적 만족은 교환가치로만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인간의 금욕적 측면을 고려하면 마르크스의 이론이 반드시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밀의 아버지는 제임스 밀로, 언론인이었다. 그의 친구는 J. 벤담으로, 밀의 아버지는 아들이 친구와 같은 학자가 되길 원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기교육을 강압적으로 시킨 것이 화근이 돼 아들은 늘 정신불안정 상태를 경험했다. 3살 때 그리스어, 8살 때 라틴어, 그리고 그는 어릴 때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명저를 섭렵했다. 천재성을 가진 아들은 ‘자유의 무게’ 때문에 오랫동안, 정서적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53세 때까지 독신인 밀은 오래전부터 알아 온 지적으로 성숙한 테일러(Harrier Taylor) 부인을 다시 만나게 됐다. 남편의 허락 하에 둘은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밀의 지적 성숙과 그녀의 시적 감수성, 감정과 영감, 강렬하면서 부드러움의 상징이 ‘자유에 대해서’에서 구현됐다.

밀은 벤담이 주창한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양적으로 보지 않고 질적으로 봤다. 개인의 질적 행복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는 노동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보지 않고, 삶의 완성, 삶의 행복으로 봤고, 교환으로 느낄 수 없는 인간의 탐미, 희열을 느낀 것이다. 우리헌법 119조 ①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함으로써 밀의 사고와 일치한다.

윤 대통령은 현재의 절박한 문제를 풀기 위해 존 스튜어트 밀을 소개했다. 그게 세계시민주의, 민주공화주의 핵심이고, 다수의 폭력, 폭정의 ‘반지성주의’를 몰아낼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첫 번째 화두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양한 위기가 복합적으로 인류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국내적으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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