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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현판, 엇갈린 논란에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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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현판, 엇갈린 논란에 몸살

▲ 지난 8일 한자(漢字)로 쓴 광화문 현판이 흰 천으로 덮인 채 설치됐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손수 쓴 한글현판을 달자’는 1인 묵언 시위가 진행됐다(오른쪽 아래).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글ㆍ한자 모두 우리 조상이 만든 문자” VS “한글만이 우리 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이 고종 2년(1865년) 중건 당시 목조 형태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오는 15일 광복절 65주년을 맞아 공개 예정인 광화문은 그동안 논란이 잇따랐던 현판을 흰색 천으로 감싼 채 지난 8일 사전 설치됐다.

 

1968년 박정희 정권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광화문 복원용 목재를 구하지 못해 콘크리트 구조로 지었다. 또한 불타버린 현판의 원래 모습도 가늠할 수 없어 박 전 대통령이 손수 한글로 적은 현판을 달 수밖에 없었다.

 

논란은 지난 2005년 1월 문화재청이 현판 교체를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한글을 옹호하는 한글 관련 단체들은 지난달 22일에 “세종대왕 등 뒤에 한자 현판이 웬 말인가!”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달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오늘날 시대정신과 국민의 소망을 담아서 한글 현판으로 다는 게 문화재로서 훨씬 가치와 의미가 크고, 외국인이든 어린이든 누가 봐도 세종로 한복판에 서 있는 세종대왕 동상과 광화문 한글 현판이 더 어울린다고 주장했다.

 

한글이 세종대왕을 통해 완성된 것은 맞지만 한글의 뼈대가 우리 시조인 단군 시대 문자였다는 의견도 있다. 세종대왕 창제 당시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 보면 ‘한글은 세종대왕이 옛 글자를 모방해 새로 창제했다’고 기록돼 있고 참고한 것은 단군3세 가륵임금 때인 기원전 218년에 만들어진 ‘가림토 38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뿐만 아니라 한자도 우리의 옛 문자였다는 의견도 있다. 단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민족의 조상인 동이족이 등장한다. 동이족이라는 명칭 자체가 말갈ㆍ거란ㆍ일본을 포함하지만, 주로 한민족을 가리킬 때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자의 시조로 알려진 창힐은 배달국시대에 제14세 치우천황의 후손으로 동이사람이다. 중국 정사인 <구당서>의 원문내용을 보면 ‘고려(고구려) 백제 신라 왜국 일본’을 동이라고 지칭해 우리 민족이 한자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강동민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가 대만을 방문할 당시 파티 석상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말하며, 한자는 배우기 어렵다고 농담 삼아 말했다”면서 “이때 임어당 선생이 말하기를 ‘한자(漢字)는 동이족인 당신 선조들이 만든 문자인데 왜 한글만 자랑하느냐’는 말을 듣고 놀라 이 사실을 고국에 전했다”고 설명했다.

 

강 이사장의 말에 따르면 안 박사는 귀국 후 한자도 우리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근거를 찾았는데, 543년 양나라 때 처음 만든 옥편에서 동이민족만이 발음할 수 있는 ‘입성’ 발음을 발견했다.

 

입성은 ‘국ㆍ물ㆍ밥’과 같이 ㄱㆍㄹㆍㅂ 받침이 있는 발음이다.

 

창건 당시 정문이란 이름에서 변경된 ‘광화문’도 본래 한자가 지닌 뜻을 풀이한다면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이 담겨있어 한글보다 한자로 써야 의미 전달이 쉽다는 주장도 있다.

 

강 이사장은 “한글 현판도 한자 현판도 문제될 것이 없다”며 “모두 우리의 글이며 예로부터 기록 문화는 그 시대를 조명한다고 했으니 기록된 역사를 깊이 성찰하고 그 의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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