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환 (사)한국오페라진흥회장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 동아예술문화원)

한국 오페라의 산 증인 김신환 (사)한국오페라진흥회장
80년대 기득권층·언론 비난에도 소신 지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오페라가 국내에 들어온 지 올해로 63년이 됐다. 현재는 서양 원어 오페라, 창작 오페라 등 가지각색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처럼 서양 전통 음악극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기까지 오페라에 인생을 건 이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다. 그 가운데 혁신적으로 ‘오페라 대중화’에 앞장선 김신환(80) (사)한국오페라진흥회장에게 국내 오페라의 발전상을 들어봤다.

지난 8월에 만난 노신사는 자신이 일군 일에 대해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일했을 뿐”이라고 겸손히 말했다. 그는 오로지 ‘한국 오페라의 발전’만을 바라보고 달려오고 있다. 그 성과로 원어 오페라 공연에서 자막을 볼 수 있게 됐다.

“80년대 중반 우리나라 오페라의 국제화운동을 실현하고자 서울시립오페라단을 창단했습니다. 당시 국립오페라단은 늘 똑같은 제작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혁신의 칼을 꺼내 들지 못했습니다. 몇 안 되는 시립오페라단은 국립오페라단에 눈치 볼 뿐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오페라계가 김 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김 회장이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오페라계의 수장들은 그를 외면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공연을 위해 오페라계 기득권층과 싸워나갔다.

기득권층은 김 회장이 펼쳐놓은 일 가운데 원어 공연과 현지인 스태프 및 배우 기용을 문제 삼았다. 언론을 통해 김 회장을 ‘사대사상에 젖은 사람’이라며 비난하기 일쑤였다. 당시 오페라 대부분이 번안돼 상연됐다.

“새로운 생각을 실현하는 데는 항상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반대세력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죠. 인류역사가 그렇습니다. ‘우리끼리’의 문화가 강한 한국은 (반대하는 정도가) 심하죠. 제가 국립오페라단의 방식을 깨트리는 행동을 하니 (기득권층의)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 김신환 회장 (사진제공: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협회장)
수십 년 동안 기득권층과 언론에 뭇매를 맞아 억울할 법도 한데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한국만을 생각했지 국립, 시립을 생각하지 않았다”며 “자막 설치 등이 일반화되면서 오페라가 대중화되지 않았는가. 어떠한 부딪침에도 반드시 옳은 것이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왜 번안이 아닌 원어 공연과 외국인 기용을 장려했을까. 바로 ‘세계화’에 초점을 돌렸기 때문이다. 오페라가 서양의 예술문화이기 때문에 국내무대뿐만 아니라 세계로 나갈 기회를 적극 활용하고자 했다. 원어로 훈련받은 한국 성악가들이 언제든지 세계 저명한 극장에 섭외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는 서양 음악인이 국내 무대에 오르는 것과 같다.

또한 김 회장은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연출가, 무대미술가, 지휘자를 국내 오페라 공연에 참여시켜 낙후된 한국 오페라계가 한 단계 성장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작업과 더불어 김 회장은 젊은 성악인들은 국제 수준의 전문가로 육성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12년간 그와 같이 연주했던 당시 젊은이들은 현재 대학교수에서 후학을 양성하거나 직접 오페라 무대에 올라 그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 회장의 바람대로 한국 오페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중견 음악인이 돼 있는 셈이다.

그의 오페라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97년 (사)한국오페라진흥회를 설립해 오페라에 대한 지원과 연구를 끊임없이 해왔다. 진흥회는 현재 잠시 닫혀 있으나 곧 문을 다시 연다.

“이어령 교수가 문화부 장관일 때 두 가지를 제안했어요. 하나는 예술교육기관을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문화부 소관으로 옮기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한국 오페라의 국제화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건립하자는 제안이었죠.”

두 가지 제안은 모두 이뤄졌다. 오페라 하우스는 예술의전당 안에 설립됐다.

“세계적인 거장 에토르 깜뽀갈리아니(Ettore Campogalliani, 1903~1992) 선생은 ‘이탈리아가 수백 년 누려오던 오페라 종주국이란 칭호는 한국에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이 말을 실현하기 위해 지혜와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모진 바람을 이겨냈기 때문일까. 올해 여든의 나이지만 김 회장의 눈은 푸르다. 그만큼 오페라에 대한 열정이 가득 차 있다. 자신이 일궈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페라계가 더욱 발전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뼛속까지 스며든 음악인이다.

 

김신환 회장 약력

영남대 음악대학장 교수(1984~1996)
서울시립오페라단 창단, 초대단장(1985~1996)
예술의전당 이사(2000~2002)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설자문의원
서울시 세종문화회관 대표이사장(2002~2004)
現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발 조직위원장
現 한국예술가곡 진흥위원회 공동대표
現 한국오페라진흥회장
現 러시아 UFA 국립예술종합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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