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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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입안자가 미래를 생각하고 정책을 펴는지 궁금하다. 문재인·윤석열 정부가 노동자 중심 사회, 즉 기업가 혐오사회의 같은 코드인가? 5월 26일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체 부담’이라는 성명을 냈고, 노동계는 그 제도가 ‘폐지돼야 마땅하다’라고 결론 냈다. 대법원은 우선 노동자의 편에서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A씨가 과거 자신이 근무했던 B연구기관을 상대로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급여 차액을 돌려달라”며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년이 61세였던 이 연구기관은 2009년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A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돼 최소 93만원, 최대 283만원 월급이 깎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임금 등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 4조의 4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연령 차별’이란 것이다. 대법원은 아무리 노사 합의가 있었더라도 ①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② 실질적 임금 삭감 폭이나 기간 ③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과 강도의 저감(低減) 여부 ④ 감액 재원이 도입 목적에 사용됐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했다(조선일보, 5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 등 3가지 개혁을 새 정부 국정 과제로 제시하고 국회의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그는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고 국회에 간곡히 부탁을 했다.

물론 임금피크제의 본격도입은 박근혜 정부 때이다. 정부는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20대 국회는 야당 성향이 167석이었고, 초선·재선 90명 이상이 586 강성을 포진하고 있을 때였다. 더욱이 노동계 출신이 12명에 당선돼, ‘더 험난해진 노동개혁’이 예고됐다. 당시 여당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그 후 유승민 원내대표가 정부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었다. 그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각국과의 FTA를 활성화시키고, 정상외교를 강화시켰다. 2013년 5월 8일 미 상·하원합동 연설회 등에 참여하고, 세일즈 대통령으로 자임하고 나섰다. 그리고 국내에서 4대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2013년 후반기 으뜸 노동개혁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이를 심화시켜 2015년 후반은 노동의 유연화를 위해 규제를 개혁하고, 임금피크제, 성과제, 여성 인력의 활동을 위해 시간제 근로, 연금개혁 등을 시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준하향화의 사회주의 문화에 쐐기를 박고, 엘리트의 역동성과 기업주의 열정을 함께 묶고자 했다. 창조경제센터도 그 맥락에서 시도했다. 공공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2015년 6월 17일 부채 비율이 높은 공기업 316개에 임금 피크제를 도입토록 했다.

2013년 5월 박 전 대통령은 노동의 유연성과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노동권과 비정규직, 고용확대, 노동 유연성 등 우리 사회노동 현안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런 발상은 당연히 노동계와 마찰이 예견됐다.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5월 30일)는 문화일보 칼럼에서 “임금피크제는 근속 연수에 따라 급여가 자동으로 올라가는 연공형 급여 제도 때문에 도입됐다. 문제는, 급여는 올라도 근무 성과가 같이 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40세 정도까지는 경력이 늘수록 대체로 일의 성과도 높아지지만, 그 후부터는 그러리란 보장이 없다. 특히, 50세가 넘어가면 나이와 성과는 오히려 반비례한다. 생물학적으로 몸과 마음이 늙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부를 게을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OECD가 수행한 성인역량조사(PIACC)의 연령별 문해력 점수 차는 그 현실을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 청년층(16∼24세)의 문해력은 OECD 회원국 중 4위로 상당히 높다. 하지만 나이와 더불어 급격히 하락해 55∼65세는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권으로 떨어진다. 원인은 공부를 게을리하기 때문이고 결과는 낮은 생산성이다. 그런데도 급여는 높아지니 심각한 병리 현상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그 사정을 따질 이유가 없었다. 그 실상이 공개됐다. 노동의 질을 높이고, 전문 사회를 가기 위한 노력, 즉 노동의 유연성의 일환으로 철도 민영화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됐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철도노조 6000명이 상경 투쟁’을 벌였다. 당시 코레일의 누적 부채는 17조원, 총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50%나 됐다.

코레일은 공공서비스 부분이다. 그들은 생존경쟁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헌법정신 대신, 빚나간 국가주의(중국, 북한)에 더욱 구미가 당겼다. 박 전 대통령은 코레일을 먼저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영과 경쟁시키고 싶었다. 민영화를 하지 않은 대신 제2철도공사를 자회사로 만들어 코레일과의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방안이었다. 코레일 노조(위원장, 김명환)는 이것조차 민영화의 연막전술이라며 파업 명분으로 삼았다. 당시 정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의 지분은 코레일(41%)과 정부 및 지자체 등 공공자금(59%)으로 구성시켰다.

한편 철도 강경 노조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사회의 갈등은 높아졌다. 노동의 유연화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원래 노동은 교육과 직결된다. 교육은 언어를 습득한다. 항상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면, 그에 대한 의식이 생기고, 의식은 곧 필요(need)를 창출한다. 그 과정이 결국 개인의 행복을 가져다주고, 개인의 자유를 확보해준다. 이는 평생교육의 차원이고, 전문사회의 차원이다. 좌파 이론으로 볼 때, 작업현장은 지배와 착취라고 본다. 그러나 우파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행복을 누릴 실천적 도장이다. 회사에 입사한 지 25년, 즉 임금피크제 연령에서 자기의 필요를 위해 일하기에 나선다. 그러나 교육을 통한 의식의 필요를 창출하지 못하면 그때는 과격한 행동으로 회사에 민패를 끼치게 된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의 유연성뿐만 아니라, 삶의 행복을 위한 차원에서 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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