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IT업계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5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 6일 오후 서울 명동의 애플 제품 판매장 모니터에 비친 그의 생전 모습과 국화꽃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1955년 뜬 별, 2011년 지다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PC 시대의 개척자이자 파괴자”로 불렸던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최고경영자)가 56세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그가 펼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프리젠테이션을 보듯 그의 삶 또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잡스의 시작이 처음부터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IT업계의 위대한 스승으로 불리는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불과 몇 주 만에 입양기관을 거쳐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된다. 그의 외조부모가 생부인 압둘파타 존 잔달리가 시리아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해 친어머니가 미혼모인 상태로 잡스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잡스 부부에게 안긴 스티브 잡스는 학창시설 내내 ‘사고뭉치’였다. 하지만 그의 입양 부모는 사랑으로 잡스를 감싼 것으로 전해졌다. 잡스는 명문 리드대학에 입학했지만 6개월 만에 중퇴했다. 이후 그는 친구 집 방바닥에서 자고, 먹을 것을 위해 콜라병을 팔아 돈을 모으는 등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잡스가 1975년 최초의 소형 컴퓨터 ‘키트’를 보고 인류를 뒤바꿀 포부를 품게 된다. 바로 이를 이용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 잡스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5세 연상의 천재 공학도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설득해 1976년 입양부모의 집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하고 ‘애플I’을 출시한다. 그리고 이듬해 개인용PC ‘애플Ⅱ’를 선보였다. 애플Ⅱ는 컬러 그래픽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모니터‧키보드를 갖췄으며 개인 시장을 겨냥한 첫 제품으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50%를 차지한다. 그 인기는 1993년까지 이어져 애플Ⅱ는 약 16년간 생산됐다.

1984년에는 컴퓨터 사용환경에 일대 혁신을 불러온 제품이라 평가되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잡스는 큰 아픔을 겪게 된다. 성공을 한창 맛보고 있을 무렵 30세(1985년)에 자신이 영입한 CEO인 존 스컬리와 이사회에 의해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너무나 직설적이고 괴팍한 그의 성격 때문에 자업자득이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잡스는 그 당시 감정을 “너무 비참해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스탠퍼드대 연설 중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다. 잡스는 컴퓨터 개발사 넥스트와 컴퓨터그래픽(CG) 영화사인 ‘픽사’로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약 11년 만에 전설이 된 잡스는 그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애플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1996년, 이때부터 잡스는 인생의 클라이막스를 달리게 된다. 잡스는 복귀 당시 연간 10억 달러에 이르는 적자를 내며 쇠락의 길을 걸어가던 애플에 일침을 가한다. 애플 엔지니어를 모은 그는 “이 제품의 문제가 뭔지 아나? 모두 쓰레기라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50개에 달하던 프로젝트를 10개로 줄이고 애플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애플 수장의 화려한 지휘가 시작된다. 1998년 화려한 색의 일체형 PC ‘아이맥’을 선보이며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고 이후 디지털 음악 혁명을 예의주시하던 그는 매킨토시에 CD를 넣고 파일로 만들게 한다. 2001년 아이튠즈 발표에 이어 일대 혁명으로 불릴 ‘아이팟’을 공개했다.

이렇게 화려한 PC 시대를 개막한 잡스가 2007년에는 자신이 개척한 PC 시대를 파괴할 만큼의 위력을 지닌 ‘스마트폰’을 선보인다. 이후 2010년 아이패드까지 잇따라 성공시키며 애플을 세계 최대 IT업체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본격적인 포스트PC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사이 잡스는 병들어 가고 있었다. 한창 아이튠즈와 아이팟으로 승승장구 하던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긴 투병생활과 동행했다. 하지만 외부적으로 그의 성공신화는 이어졌다. 불과 올해 1월 스스로 병가를 내고 CEO에서 물러나기 전까진 말이다.

다양한 의문이 쇄도하는 가운데 돌연 병가를 내고 또 약 7개월 후인 8월 24일 CEO 자리를 팀 쿡에게 넘기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10월 5일 가을에 지는 낙엽같이 애플 이사회의 성명서를 통해 사망소식을 전해왔다.

화려하게 떠올랐던 IT업계의 별. 죽음 앞에서도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 말하며 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혁신을 이뤄낸 혁신가이자 일벌레. 잡스는 더 많은 화려한 수식어를 뒤로한 채 자신의 신념인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전진하면서(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처럼 치열한 삶을 살다 2011년 드라마처럼 인생을 마쳤다.

▲ ‘혁신의 아이콘(icon)’이자 이 시대 최고의 최고경영자(CEO)로 칭송받아온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가 향년 56세로 5일(현지시각) 영면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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