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효대사.
“하늘의 기운 사람에게 돌아와 하나의 길로 통일”

[천지일보=김지현 기자] “‘천당(天堂)’에 이르는 길을 막아 놓음이 없는데도 이곳에 이르는 사람이 적은 것은 삼독(탐 · 진 · 치) 번뇌로써 자신의 집에 재물로 삼았기 때문이고 ‘악도(惡道; 지옥)’에서는 오라고 유혹하지도 않는데, 많은 사람이 가는 것은 사사오욕(몸이 짓는 오욕)을 귀하게 여기는 망녕된 마음 때문입니다(무방천당 소왕지자 삼독번뇌 위자가재; 無防天堂 少往至者 三毒煩惱 爲自家財) 무유악도 다왕입자 사사오욕 위망심보; 無誘惡道 多往入者 四蛇五欲 爲妄心寶).

이는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6편 중 1편이다.

원효(元曉, 617~686)는 신라 진평왕 39년에 압량군 불지촌(현 경산군 압량면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원효의 성은 설 씨(薛氏), 아명은 설서당(薛誓幢) 또는 설신당(薛新幢)이다. 원효는 법명(法名)이다. 그는 잉피공(仍皮公)의 손자이며, 내마(奈麻) 설담날(薛談捺)의 아들이다.

‘송고승전’에서는 원효가 일찍이 나이 십세 무렵 출가해 스승을 따라 학업을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남달리 영특했던 그에게 일정한 스승은 따로 없었다. 불교가 공인된 지 100년이 지난 무렵 신라에는 적지 않은 고승들이 배출돼 있었다. 원효가 그들을 찾아 배우고 물었지만 뒷날 불법(佛法)의 깊은 뜻을 깨달음에 있어서는 특정한 스승에 의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15세 무렵에 집안의 재산을 희사(喜捨)하고 출가해 자신의 집을 절로 지어 초개사(初開寺)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사라수(裟羅樹) 곁에 사라사(沙羅寺)를 세웠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낭지(朗智)와 혜공(惠空) 등의 고승에게 불법을 배웠다고 전해지며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그를 낳을 때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원효의 아명을 서당(誓幢)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첫새벽’을 뜻한다. 그는 그 의미대로 한국의 불교사상뿐 아니라 철학사상 일반에 있어서도 큰 빛이 됐다.

원효의 사상의 핵심은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도(道)’가 모든 존재에 미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대승기신론소)며 만물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삶을 강조했다.

그리고 종파들의 서로 다른 이론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좀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를 ‘화쟁사상(和諍思想)’ 또는 ‘원융회통사상(圓融會通思想)’이라고 한다.

원효가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예언한 것이 있으니 바로 ‘원효대사결서’다. 이는 1967년 故 박정희 대통령의 비밀 지시로 문무대왕 수중릉을 발굴하던 중 발견 된 석판의 예언문이다.

본래 분량은 16개의 석판이었는데 박 대통령의 불행한 미래를 예언한 부분이 자신에게 누를 끼칠 것을 두려워 한 발굴자들이 글자 16개를 지워 버렸다. 그러나 남은 부분만으로도 놀라운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하늘의 기운이 사람에게 돌아와 음양이 같이 흘러가는 금강무등세계를 이루고 거짓 없는 참다운 사람들이 세상을 다스리니 모든 것이 하나의 길로 통일되어 다스려진다. 하늘이 그린 그림과 그 약속이 미리 예정돼 있어서 그 희망의 말씀을 땅으로 내려보내 땅을 하나로 통일해 한 나라로 만든다. 이 비결은 19번째 정미년에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그 큰 하늘의 뜻이 크게 뻗어나가리라. 그러므로 하늘의 말씀이 적혀있는 이 돌은 바다 속에 누워있는 한가한 돌이 아니다. 일천방면 세계만방으로부터 달려와서 상하공명하여 상응상수하니 마침내 그 광명의 빛이 골고루 어두운 데까지 공평하게 흐르게 된다(天氣歸人 有哉日月 眞人御世 宰物一道 蒼龍七宿 備言天體 紫微開垣 十九丁未 始有世播 鴻志大展 奇於名人 張之隱士 金島玉冕 補弼滿堂 一千方面 光陰同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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