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의 힘은 컸다. 광주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청각장애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결국 광주 인화학교 폐쇄와 이 학교를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우석’의 법인 허가를 취소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재탄생한 소설이나 영화, 연극과 같은 경우 당시의 상황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욱이 그 매체가 영화처럼 시각화된 경우라면 당시 사건에 대해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영화 ‘도가니’가 그렇고 2003년 개봉된 ‘살인의 추억’ 그리고 2007년 개봉돼 큰 파장을 일으킨 ‘그놈 목소리’가 대표적인 예다.

특히 199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형호 군 유괴살해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그놈 목소리’와 같은 경우는 공소시효기간 연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온 실제 범인의 몽타주와 당시 이 군 부모를 협박했던 실제 목소리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은 사건의 재수사 요구가 빗발쳤고,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다룬 ‘아이들’은 또 한 번 공소시효 폐지 여론을 확산시켰다.

영화 ‘도가니’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과 아동성범죄 공소시효 폐지를 촉구하는 등의 순기능을 이끌어내는 것에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화이기에 가미된 영화적 요소마저도 실제로 받아들여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것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영화를 만든 황동혁 감독과 제작사 또한 사실과 영화를 위한 각색 사이에서 관객들이 혼동할까봐 우려했다고 한다. 실제 영화가 개봉된 뒤 실제 사건과 관계없는 등장인물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상호 등 별개의 인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 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그로 인해 사회 기득권과 제도에 대한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개선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허나 사회시스템의 정비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잊어버리고 자신의 분풀이 대상, 공분의 대상을 삼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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