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비는 한(韓)나라 공자(公子)였는데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자(儒者)의 무기력한 교육을 배척하고 순자의 성악설, 노장(老莊)의 무위자연설을 받아들여 법치주의를 주장한 법가의 학설을 대성함. 그의 학설 중심은 형명과 법술의 이론으로서 황로(道家)의 흐름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비는 말더듬이었기 때문에 말은 어눌했으나 문장은 뛰어나 많은 저술을 남겼다.(한비자 20권)

한비는 젊었을 때 순자(荀子)에게 배웠는데 그가 같이 공부한 사람 중에 이사(李斯-진시황제 때의 재상)가 있었는데 그는 한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한나라는 이웃나라들의 침범을 받아 영토를 자꾸 빼앗기고 있었다. 한비는 조국의 슬픈 현상을 보고 글로써 왕에게 부국강병책을 건의했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법의 제도를 개혁하고 권력으로 신하를 거느리고 부국강병을 꾀하기 위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벌레와 같은 자들만을 등용하여 공로와 실적 있는 사람을 위에 앉혔으므로 그야말로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유학자는 학문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협객의 무리는 힘으로 법을 범하고 있다. 평소에 그런 자들을 등용해 봐야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 병사에게 의지하게 되고 막상 써야 할때는 쓸모가 없게 된다.

깨끗하고 정직한 자들이 질 나쁜 신하들 때문에 등용되지 못함에 화가 난 한비는 옛날 왕들의 정치적 업적을 조사해서 ‘고분’ ‘오두’ ‘내외저’ ‘설림’ ‘설란’ 등의 작품을 썼다. 특히 왕에게 건의하는 어려움을 알고 있던 한비는 완벽하게 ‘설란’을 섰는데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진나라에서 죽었다. 설란에서 한비는 왕에게 건의하는 어려움을 말했다.

왕에게 건의하는 것은 어렵다. 어떤 점이 어려운가. 그것은 건의하는 자가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아니고, 또 자기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용기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어려움도 아니다. 건의의 어려움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은 뒤에 자신의 의견을 거기에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다. 가령 상대방의 군주가 명성을 얻고 싶어 하는데 그에게 큰 이익을 앞세워 설득하면 비천한 자에게 멸시를 당했다고 상대도 해 주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이익만을 추구하는 군주에게 명성을 얻는 마음가짐을 설득하면 세상 물정도 모르는 멍청이라고 경멸당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이익을 구하면서도 명군인 척하는 군주를 상대한다면 어떤가. 그에게 명군의 마음가짐을 설득할 경우 형식적으로는 등용될지 모르지만 실제는 따돌림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익을 얻는 법을 말할 경우는 의견만 도둑맞고 그 뒤는 모른 척할 것이다. 건의하려면 이 정도의 상식은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획은 비밀리에 진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며 도중에 밖으로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설사 그것을 누설할 생각이 없더라도 군주가 계획하고 있는 일이 우연히 새어나가 거슬리게 되면 건의하는 사람은 위태롭다. 군주에게 잘못이 있었을 때 옛일을 들어 군주의 잘못을 드러내면 건의하는 자는 위태롭다.

벼슬한 지 얼마 안 되고 또 신임도 받지 못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모두 드러내면 자신이 건의한 획이 성공하여 공을 세워도 포상은 받지 못한다. 만약 계획이 실패하면 의심을 받아 위태롭다.
군주가 누군가의 의견을 좇아 계획을 세우고 그 공을 독점하고 싶어 할 때 그 과정을 아는 것처럼 건의하는 자는 위태롭다.

상대방이 겉으로는 무엇인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실은 뒤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경우 그 뒤까지 꿰뚫지 않고 건의하면 위태롭다. 아무래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하거나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일을 중지시키려고 하면 건의하는 자는 위태롭다.

군주는 인격자를 화제에 올리면 자기를 비꼰다고 생각하고, 쓸모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 무엇인가 선동하는 줄 알고 경계한다. 총애하는 자를 칭찬하면 자신에게 아부한다고 의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나쁘게 말하면 자신의 마음을 시험하고 있다고 신경을 쓴다. 간추려서 짧게 말하면 잘 모르는 인간이라고 상대하지 않으며, 길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는 인간이라고 귀찮아한다. 말을 아껴 골자만 이야기하면 말도 할 줄 모르는 샌님이라고 깔보고, 계획을 세워 구체적 의견을 제시하면 예의도 모르는 자라고 경멸한다. 이것이 건의의 어려움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