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특화거리에 얽힌 입장 차

[천지일보=박수란 기자] ‘두두두…’ 구청 단속반과 용역업체 직원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노점상 철거를 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나온 이들은 노점상을 에워싼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려는 노점 상인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길바닥에는 기물들이 나뒹굴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결국, 항의 끝에 지친 상인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친다.
이런 장면은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자주 목격됐다.

 

▲ 지난 6월 1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서 영업을 시작하려는 노점상들이 구청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가로막히자 울분을 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노점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부터 ‘노점특화거리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와 노점상의 이 같은 충돌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불법 노점상을 철거하기 위한 시와, 생계를 위해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노점상과의 마찰은 계속됐다. 그래서 시가 내놓은 대책이 ‘노점특화거리조성사업’이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진 기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좀처럼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를 점용하고 노점을 하는 것은 불법이며, 시민보행권 보장도 중요하기에 계속해서 단속해왔다. 하지만 정말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장사하는 서민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절충안으로 나온 것이 이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의 골자는 단순한 단속이 아닌 노점상을 ‘관리’한다는 방침으로 대로변에 있는 노점을 시민 통행이 잦지 않은 이면도로(뒷길) 안으로 옮겨 이곳을 노점특화거리로 지정하는 것이다. 또 시가 정해준 규격화(가로 2m×세로 1.5m)된 노점판매대를 구입하고, 도로점용료를 부과해 합법적인 노점을 만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 전체에 분포돼 있던 1만여 개 노점을 2489개(2010년 말 기준)를 정비해 도로변에 즐비했던 노점을 잘 보이지 않는 골목길로 이전시켰다. 이로 인해 시민들의 통행 불편도 해소되고 도시 미관도 좋아진 듯하지만, 문제는 노점상들의 생존권이다.

지난 17일 기자가 노점상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30여 년 동안 종로대로변에서 빵을 팔아온 이모(61, 남) 씨는 지난해 낙원동 특화거리로 옮겨왔다. 그는 “좀처럼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는 곳을 특화거리라고 조성해 노점상들을 몰아놓고… 사람이 없는데 장사가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이 때문에 문을 닫은 곳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인사동 사거리부터 북인사마당 사이에서 엿을 팔아왔던 김근기 종로노점상연합회 전 부회장도 19일 특화거리로 지정된 인사동 사거리 남측으로 이전했다.

그는 “노점특화거리라고 말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람이 없는 골목길 등으로 옮기면 장사가 되지 않으니 어차피 없어지게 만드는 정책”이라며 “도로점용료를 내고 합법적인 노점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노점 상인들을 다 죽이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부회장은 “종로구만 해도 1000여 개의 노점상이 있었는데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고 지금은 400여 개 정도만 남아 있다”면서 “이마저도 정책이 계속되는 한 다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특화거리 방향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노점의 쾌적한 분위기를 위해 인도 폭을 넓히고 파라솔을 갖추는 등 다양한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노점상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해 온 사람이 대부분이라 고령층이 많다. 김 전 부회장도 당장 노점을 그만두면 경비밖에 취직할 곳이 없고 이마저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나이가 드신 분이 많으니깐 10년 사이에 순리적으로 노점상이 소멸될 것”이라며 “정부에서는 노점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인계되지 않게만 단속한다면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생존권이 달린 문제를 너무 쉽게만 생각하니 서민들은 피눈물이 흐른다”고 한탄했다.

서울시는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철거할 수도 없고, 어려운 서민 노점상들은 보호하되 기업형 노점상은 단속·철거를 통해 거리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이 사업을 하면서 충돌을 빚지만 그렇다고 불법적인 것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특화거리를 조성해 점용허가를 받고 도로점용료를 부과하거나 불법노점에 대해서 단속을 유보하는 대신 과태료를 물게 한다”고 전했다.

도로변의 노점 탓에 사람들이 다니기에 불편한 면도 있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민도 있었다.

이민정(22, 여, 일산) 씨는 “인사동 같은 경우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오고, 노점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면서 “일부러 노점을 찾는 외국인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것도 한국문화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다니기에 불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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