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AP/뉴시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모습. 2022.03.24.
[뉴욕=AP/뉴시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모습. 2022.03.24.

미영프 등 15개국만 별도 성명
한국도 동참해 규탄, 북한 불참

서방, 회의 후 “안보리 침묵” 비판
서방 측과 북중러 관계 고착 우려

북한, ICBM 발사성공 일제히 보도
"우리식 사회주의 승리의 상징" 자평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25일(현지시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약 5년만에 공개회의를 열었지만, 그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를 넘지 못한 것인데, 안보리가 채택할 수 있는 결정 가운데 가장 수위가 낮은 언론 성명조차 내놓지 못하자 대북 추가 제재에 대한 논의도 이미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전망이 나온다.

◆서방 대 중러 대립 구도 뚜렷

유엔 안보리는 이날 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 및 비확산 문제를 다루기 위해 공개회의를 소집했다. 안보리가 북한 미사일 문제로 공개회의를 연 것은 지난 2017년 11월 이후 5년여만이다.

안보리 공개회의 초반부터 서방 대 중‧러의 대립 구도는 뚜렷했다. 미국은 “안보리가 한목소리로 북한을 비판하고, 대북 제재 역시 확실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중러를 압박했다.

하지만 중러는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 전략 핵무기를 배치해 북한을 위협했다”며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며 맞섰다. 2018년 북미정상회담 당시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미국은 연합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모라토리엄(유예)’ 약속을 했는데, 그간 미국이 지키지 않은 결과가 ICBM 발사라는 논리다.

각국 대표들의 공개 발언 이후 비공개로 전환된 뒤에도 계속 평행선을 달렸고 끝내 언론 성명 채택도 불발됐다.

통상 안보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크게 세 가지다. 실질적인 강제력을 갖는 ‘결의’ 채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공식 기록으로는 남는 ‘의장 성명’, 그리고 공식 기록으로도 남지 않는 가장 약한 게 언론을 상대로 안보리의 입장을 전하는 ‘언론 성명’인데 이날 회의에서는 중‧러의 반대로 북한 규탄 언론 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한 셈이다.

안보리 공동 성명이 무산되자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5개국은 별도의 관련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성명에는 우리나라도 동참했다. 조현 주유엔 한국 대사는 “대한민국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가장 강한 어조로 비판한다”면서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당사국으로 회의 참석 요청을 받았지만 불참했다.

[뉴욕=AP/뉴시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25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2.03.25.
[뉴욕=AP/뉴시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25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2.03.25.

◆추가 제재도 쉽지 않을 듯

강대국 사이 시각차가 있는 만큼 상황이 그렇다면 대북 추가 제재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이 염두해 두고 있는 추가 제재의 핵심은 기존에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결의에 포함된 이른바 ‘트리거(trigger, 방아쇠)’ 조항이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하면 각각 원유 4백만 배럴과 정제유 50만 배럴로 제한된 대북 에너지 공급량을 추가로 줄일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면 채택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미일을 비롯한 서방 측은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중‧러를 비판하는 한편, 북한의 도발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계속 진전시키는 가운데 안보리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서 “우리는 모든 유엔 회원국, 그리고 특히 모든 안보리 이사국이 북한 규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트리거 조항에 따른 북한 제재 강화 방안은 안보리 회의에서 계속 논의될 예정이지만, 중러가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며 반대하고 있는 형편이라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으로선 우방들의 지원에 힘입어 유엔 이름으로는 가장 낮은 단계의 규탄 성명도 나오지 않은 상황을 앞으로도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미일 등 서방 측과 북중러의 관계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력의 지속적인 강화를 공언한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동유럽에 쏠려 있어 이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탄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여전히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강조점이다.

[서울=뉴시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운데)가 25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공개 회의 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 성명엔 상임이사국인 영국, 프랑스와 비상임이사국인 브라질, 아일랜드, 노르웨이, 비이사국인 한국 등 15개국이 동참했다. 2022.03.26.
[서울=뉴시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운데)가 25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공개 회의 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 성명엔 상임이사국인 영국, 프랑스와 비상임이사국인 브라질, 아일랜드, 노르웨이, 비이사국인 한국 등 15개국이 동참했다. 2022.03.26.

◆北, ICBM 발사성공 띄우며 자축

이런 가운데 북한은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성공과 주민 반응을 대대적으로 전하며 분위기를 고취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은 26일(한국시간) 1면에 ‘위대한 인민의 긍지 하늘땅에 차 넘친다’는 제목의 정론에서 ICBM 발사 성공을 자축하며 “우리도 보고 세계도 보았다”며 “우리 국가는 또 한 번 강대해졌고 우리 인민은 또 한 번 위대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체적 힘의 응결체, 자력갱생의 창조물인 우리의 화성포 -17형, 시작부터 마감까지 조선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를 바라보는 인민의 긍지는 이처럼 하늘 끝에 넘친다”고 치켜세웠다.

별도의 기사에서도 “얼마나 가슴 뻐근하도록 통쾌한 우리의 승리인가. 단순히 첨단과학 기술의 집합체로만 볼 수 없다”면서 “조국과 인민의 존엄과 명예가 비낀 무적의 보검이고 강국 건설을 위하여 용진하는 인민의 의지가 응축된 우리식 사회주의의 승리의 상징”이라고 자평했다.

(서울=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지난 24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발사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영상을 조선중앙TV가 25일 공개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2.3.25
(서울=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지난 24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발사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영상을 조선중앙TV가 25일 공개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2.3.25

아울러 신문은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직장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장, 조영실 교육위원회 부국장 등이 ICBM 발사 성공을 축하하는 각계 인사의 반향도 다수 전했다.

전날 북한은 이 미사일이 신형 ICBM인 ‘화성-17’형이라며 발사 성공을 일제히 보도했다. 조선중앙TV를 통해선 이례적으로 화려한 편집과 배경음악을 사용해 김 위원장을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린 ICBM 발사성공 영상을 내보이기도 했다. 화성-17형 탄두부에 그려 넣은 ‘붉은 별’과 발사 성공일인 ‘3월 24일’, 발사 영상에서 처음 등장한 ‘붉은기중대’에 대해서도 찬양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지난 24일 오후 평양시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북한의 ICBM 추정 탄도미사일을 포착했다면서 고도는 6200㎞이상, 거리는 1080㎞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6일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6일 "화성-17형 시험발사 성공소식에 접한 인민들의 가슴은 우리 조국과 인민의 존엄과 위상을 만방에 떨친 무한한 긍지와 희열로 끓어번지고있다"고 전했다. 북한 주민들이 노동신문에 실린 '화성-17형' 시험발사 성공 소식을 보고 있다. 202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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