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도 탈피 의도… “남한에 긍정적 영향”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북한과 러시아가 최근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기로 합의하면서 한반도 내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러시아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은 지난 13일 러시아 동부군관구 이고리 무기노프 사령관 공보실장을 인용해 러시아와 북한의 합동 군사훈련이 예정돼 있음을 확인했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같은 날 서울의 ‘북한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과 러시아가 이르면 올해 안에 합동 군사훈련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번 합의는 지난 8월 러시아군 동부군관구 콘스탄틴 시덴코 사령관이 이끄는 군사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한 이후 나온 것으로, 당시 현지 통신들은 “러시아군 대표단이 합동 군사 훈련 등 양국의 군사 협력을 재개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방북했다”고 전한 바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공격과 방어훈련을 포함한 상당한 규모의 군사훈련을 제안했다. 그러나 러시아 측이 난색을 보이는 바람에 결국 수색과 구조를 하는 수준의 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훈련은 전투기 조종사가 조난했을 때를 대비하는 형태로 전개되며, 연내에 러시아 극동 지역 해상에서 양국의 해·공군 병사가 참가해 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번 합의와 관련해 김진무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과 러시아가 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하기 위해서 선택한 카드로 보인다”면서 “양국은 현재 동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군사 훈련을 같이 할 이유가 없는데 관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라든지 가스관이라든지 이런 요소 때문에 그런 결정이 나왔다. 또 국경이 인접해 있는 북한과 러시아가 긴급 상황에 협력을 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최근 러시아에 지속적으로 손길을 보내는 데에는 대중 의존도를 줄여보겠다는 속내가 짙게 녹아있다. 외관상으로는 중국이 북한의 ‘형제국’ 또는 ‘보호국’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동맹기능은 거의 상실됐다. 전통적인 혈맹이었던 북한이 국제사회의 골칫거리가 된 데다 중국 역시 냉전시대의 가치관에서 탈피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개혁·개방을 포기함으로써 궁핍해질 대로 궁핍해진 북한은 기댔던 중국에서 원하는 만큼 지원을 해주지 않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09년 현정은 아산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을 믿지 못한다”고 한 부분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와 함께 한반도에서 중국의 세력이 더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이 러시아로 눈을 돌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은 ‘중국의 강대화는 북한의 안전에 큰 위협이고, 특히 미중 간 패권 다툼 속에서 언제 다시 북한이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가스관 사업 등도 러시아와 남한을 끌어들여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 전문가들은 잇따라 이뤄지고 있는 북러 협력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북한을 개혁·개방시킬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거 냉전적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모든 사안을 ‘북-중-러 vs 한-미-일’의 대결 구도로 바라봐서는 안 되며, 북한을 둘러싼 러시아와 중국 역시 갈등보다는 ‘협력 무드’로 나아가고 있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홍완석 소장은 “북러 관계가 강화되는 것은 북한의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좋은 점이 많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과거 소련이 북한 정권의 성립과 발전의 후견자이긴 했지만 이제는 북한과 일반적인 관계가 됐고, 이 사안을 냉전 구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충북대 정외과 장공자 교수는 “일단 북러 군사 협력에 대해 중국이 크게 견제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고 서로 간의 협력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러시아나 중국이 이미 서방에 대한 맛을 많이 봤기 때문에 북한이 문을 여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경직돼 있는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간접적으로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라고 덧붙였다.

북·중·러 간에 전략적 연대 강화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광운대학교 중국어과 신상진 교수는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에 이뤄진 한미동맹 및 안보 강화 속에서 고립된 측면을 돌파할 수 있는 카드를 모색했고, 결과적으로 북·중·러 간에 전략적 연대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그러한 북·중·러 연대에 미리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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