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로봇/인지시스템연구부 공학박사
지난 9월 5일 인터내셔널 비즈니스타임스지는 미국 터프츠대 화학자들이 머리카락 굵기의 6만분의 1 정도인 1나노미터(1nm=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분자 한 개로 전기모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이 단일 분자를 이용한 전기모터는 지난 2005년 나온 200나노미터 크기의 전기모터 제작 기록을 깨뜨린 것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오를 예정이며, 미래 나노로봇의 구동을 위한 기반기술로써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8월 말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에서 나노입자를 활용, 마이크로미터 단위 작은 소자의 자축(磁軸, magnetic axis)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나노소재 응용 구동기술을 개발하여 발표했다. 또한, 지난 12일 고려대학교 신소재공학부와 서울대학교병원 연구팀은 내부는 산화철, 껍질은 산화아연으로 구성된 나노입자를 제조한 후 수지상세포에 탑재, 기존 수지상세포 치료기술보다 효과가 뛰어난 항암치료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나노기술은 항암치료에 활용될 나노로봇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다. 1987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이너스페이스’에서 캡슐을 타고 인체 내부를 여행하던 공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사람과 기계가 함께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캡슐형 로봇이 사람에 의해 원격 조종되거나 자발적으로 목표지점에 도달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형식이 되겠지만 말이다.

나노의 세계는 양자역학의 연구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이 1959년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열린 미국물리학회 정기총회의 강연에서 처음 제시한 바 있다. 파인만은 당시 강연에서 분자의 세계가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 아주 작은 구조물을 세울 수 있는 건물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분자 크기의 기계 개발을 제안한 것이다.

이후 나노기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릭 드렉슬러 박사는 1986년 발간된 그의 저서 ‘창조의 엔진(Engine of Creation)’에서 극미세 단위에서 정보를 저장하는 나노 장비의 출현을 예견하였고 특정 바이러스만 선별적으로 파괴하는 물질도 제시했다. 그는 또 분자기술 대신 나노기술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나노시대를 열었으며, 미국이 2000년에 국가나노기술계획(NNI)을 발표하고 국가 차원의 나노과학기술개발을 선포하는 데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미래 나노기술의 집합체인 나노로봇이 탄생하면 여러 분야에 유용하게 활용되겠지만 가장 유망한 분야가 바로 의료분야가 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특히 세포 수준으로 작게 만들어진 나노로봇은 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혈관에 쌓이는 지방이나 혈전을 제거하여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나아가서 암세포를 골라가며 박멸하여 항암 치료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 나노로봇의 실용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풀어야 할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첫 번째는 로봇 구동을 위한 동력원 문제인데 기존의 배터리를 축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혈액 속의 포도당을 분해하여 동력을 얻는 생체연료전지가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두 번째, 나노세계에서의 로봇의 동작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아왔던 뉴턴역학으로 대표되는 물리학적 법칙이 유용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단순히 전기 모터의 크기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박테리아 같은 미세한 생명체의 움직임으로부터 새로운 구동 방식을 고안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나노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지만 나노로봇이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할 문제들이 많다.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미래 생명 연장과 환경 보전의 첨병이 될 나노로봇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두각을 나타낼 그날을 기약해 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