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역임한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 25일 천지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2.2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역임한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 25일 천지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2.26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 평가

“푸틴 목표는 우크라 ‘친러 정부’ 수립”

“90년대 서방 거짓말로 이번 전쟁 시작”

“우크라 정부 나토 가입 집착 국민은 고통”

“쿠바 사태 펄펄 뛰던 미국, 내로남불”

“우크라 핵 포기?… 소유한 적도 없다”

“푸틴에 후과 있을 것… 힘이 다가 아냐”

[천지일보=이솜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24일 국영 TV 긴급연설에서 우크라이나 돈바스에 대한 군사 작전을 승인했다고 밝힌 후 공격은 시작됐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지 하루 만에 수도 키예프 인근까지 둘러쌌다. 수도 함락은 이제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왜 전면전을 강행했을까. 어쩌다 이 같은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 사태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할 부분은 무엇일까.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역임한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은 25일 천지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푸틴 대통령의 공격 목표는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에 있다. 키예프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에 친(親)러시아 정권을 수립한 이후에는 즉시 군대를 철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 진행 당시는 우크라이나 현지시간 25일 오전으로, 러시아군이 키예프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시작한 후 몇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박 소장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스스로를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포장하고 있으나 러시아가 이처럼 폭발하게 된 데는 과거 서방의 거짓말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불신이 비극을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러시아 역시 치러야 할 대가가 클 것이라고 박 소장은 내다봤다. 또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와 동맹이 아니라는 이유로 군 파병을 하지 않는 상황을 볼 때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다음은 박 소장과 일문일답.

-러시아의 키예프 점령 후 시나리오는

= 정해진 수순이다. 이번 작전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권을 전복하는 게 목적이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친러 정부를 수립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막는 등 외교 노선을 바꾸기 위해서다. 우크라이나 영토 전체를 점령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푸틴 대통령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정권 전복이라는 목적이 달성되면 러시아군도 우크라이나에서 즉각 철수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서방에 대한 요구 중 핵심은 나토의 우크라이나 가입 거부다.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지극히 낮은데, 푸틴 대통령은 왜 이를 꼭 문서로 보장을 받으려고 할까

= 이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0년 소련이 동서독의 통일 협상에 동의하고 동독 주둔 소련군을 철수시키는 과정에서 서방의 구두 약속을 받았다. 나토를 더 이상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확언이었다. 물론 미국과 나토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독일 슈피겔지는 최근 비밀 해제된 영국문서보관소 문서를 근거로 서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간 나토는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동유럽 국가들을 가입시켰다. 이처럼 서방이 쉽게 말을 바꾸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문서로 보장을 받으려는 것이다.

러시아의 안보 우려와 관련해서는 소련의 붕괴 이후 나토에 대항하는 공산권 군사 블록인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해체됐는데 나토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 젤렌스키 정권은 우크라이나에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많이 들여왔는데 러시아는 국경을 맞댄 국가에 어떤 무기가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고 전략무기가 배치된다면 말 그대로 코앞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 아닌가. 이런 ‘비대칭적 상황’이 문제다. 1962년 소련이 미국의 면전인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 하자 미국이 펄쩍 뛰었던 사태를 생각해보라. 입장이 바뀌니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역임한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 25일 천지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2.2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역임한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 25일 천지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2.26

 

-우크라이나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는가

= 아니다. 애초에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안 한다고만 하면 해결될 일이었다. 미국과 서방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동유럽에 배치된 나토군 병력과 무기 축소 등 요구가 더 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이것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정권은 국민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외교 정책을 러시아의 압력에 의해 바꾼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봤을 때, 러시아군이 무력 시위를 하고 있고 미국 등 나토는 무기는 지원하되 병력은 파견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고민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나토 가입을 추진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있었다면 나토 가입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어야 했다. 지금 벌써 국민은 고통을 받고 있고 이웃나라로 피신하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관계를 쉽게 말하자면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책임질 생각이 없는 연인(서방)에게 매달리는 사람(우크라이나)과 같다. 

러시아군의 키예프 진격 소식을 듣고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이 생각났다. 당시 조선은 이미 쇠약해진 명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청나라 만주족을 무시했다. 세상이 변한 줄을 몰랐던 것이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점령할 생각이 없었다. 명나라를 정복하기 앞서 배후를 단도리 하고자 했을 뿐이다. 조선이 청나라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취했더라면 얼마든지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굴욕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분에만 빠져 어리석었던 인조 임금은 결국 백성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삼전도의 굴욕을 겪어야 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비슷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따른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포기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관측도 있다

= 우선 ‘핵 포기’는 사실이 아니다. 먼저 핵무기의 소유권이 우크라이나가 아닌 소련에 있었다. 소련이 안보 목적에서 당시 독립 국가가 아닌 지역이었던 우크라이나에 배치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자력으로 개발해서 보유한 핵무기는 없다. 따라서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에 반납한 것이지 포기한 게 아니다.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에 큰 영향을 끼칠까

= 현재까지 서방의 제재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지금껏 보인 제재 카드를 다 쓰지 않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 것이다. 이를 주저하고 있다. 왜냐하면 SWIFT는 양날의 칼이다. 러시아가 국제결제망에서 제외되면 러시아뿐만 아니라 서방도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전쟁 직전까지 외교 노력이 있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 외교는 러시아의 플랜 A였다. 수십년간 노력해왔지만 미국은 러시아의 외교 노력을 무시했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들은 러시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난리를 피우니 조 바이든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대화에 응했다. 지금껏 미국이 이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미국은 러시아가 안보 우려 해소 차원에서 제시한 요구 사항 즉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거부, 동유럽에 배치된 나토의 병력과 무기를 1997년 수준으로 되돌릴 것 등에 대해 성의 있는 답변을 거부하고 통상적인 군비 축소를 거론했다. 우크라이나는 심지어 일부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가입에 대해 유보적인데도 나토 가입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러시아가 최근 힘을 키우기도 했지만 인내심도 바닥났다. 이런 상황이 푸틴으로 하여금 초강수를 두게 만들었다. 서방 내에서도 지리적 위치에 따라 외교 노력이 차이난다. 동유럽과 가까운 독일과 프랑스는 어떻게든 전쟁을 막아보려고 지도자들이 이리저리 뛰었지만 상대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과 영국은 마치 전쟁을 기다리는 듯한 발언을 일삼았다. 구경꾼의 입장에서 실리만 챙기려는 심산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역임한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 25일 천지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2.2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역임한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 25일 천지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2.26

-중국이 조용하다

= 러시아의 전격적인 침공으로 젤렌스키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놀란 사람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일 것이다. 러시아의 결단력과 단호함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경제적으로 우세를 보이는 중국이 최근 러시아에 대해 예전과 다른 태도를 보여 왔지만 지금 바이든 대통령도 러시아를 비난만 할 뿐이고 꼼짝 못하고 있지 않나. 또 우크라이나는 중국이 추진 중인 신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의 중요한 거점이다. 조용할 수밖에 없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지금 사태를 비교하자면

= 공통점이 있다. 서방은 러시아 비난과 제재만 한다. 다만 당시 워낙 크림반도가 작은 지역이고 지금처럼 러시아가 몇 개월간 무력시위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8년 전에는 정말 며칠 만에 끝났다. 이번에는 나토도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동유럽 국가들에 병력을 늘렸다. 이것이 차이점일 뿐이다.

 

-한국인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봐야할까

= 지금 서방은 우크라이나와 동맹이 아니므로 도와줄 수 없다는 논리다. 한미 동맹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한국 정부의 대책에 있어서도 서방이 파병 안하는데 우리가 파병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제재에는 세컨더리 보이콧(제재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 등에 대해서도 제재 효과가 발생) 효과가 있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추가 제재도 큰 의미가 없다. 전쟁을 일으킨 것 자체에 대해 러시아를 비난 하는 정도에서 그치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관계에서는 착한 편, 나쁜 편 흑백으로 따지면 국익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냉정하게 봐야한다.

 

- 이번 사태에서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승리했나

= 지금 사태만 놓고 보면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라고 볼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 러시아가 전 세계에 무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것은 사실이나 그에 따른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그간 많이 자제해왔고 이미지도 점차 안정적으로 개선됐는데 이렇게 무력을 행사하면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를 싫어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미지가 추락하고 소프트파워도 약해진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지원을 받아 세르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를 거론하면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계 주민이 많아서 독립을 시킨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도 영토가 넓고 자치공화국도 있다. 만약 그 안에서 소수민족 자치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면 푸틴 대통령은 이를 인정할 것인가. 이런 주장은 자기 발등을 찍을 수 있다.

소련에서 독립한 신생 국가들은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러시아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이를 이해해 줘야지 발끈하고 거칠게 반응하게 되면 주변 국가들이 지금이야 숨을 죽이고 있지만 나중에 러시아에 위기가 왔을 때 돕고 싶겠나. 결국 후과가 있다. 우크라이나가 힘이 없어서 당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의 마음에 원한이 맺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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