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성경 구절 낭독…3천명 희생자 이름 호명
CNN 등 특집방송…10년 전 테러 순간마다 여섯 차례 묵념

(워싱턴·뉴욕=연합뉴스) '9·11 테러' 10주년을 맞은 11일 미국 각지에서 당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 인파가 몰렸다.

10주년이라는 점 때문에 9·11을 되돌아보는 미국민의 관심은 여느 해보다도 높았고, 게다가 기념일 직전 포착된 알-카에다의 테러 기도 정보로 테러와의 싸움에 대한 비장한 분위기까지 더했다.

CNN 등 주요 방송은 곳곳에서 열리는 추도식을 중계하고, 9·11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특집방송을 온종일 이어갔고, 워싱턴포스트(WP) 등 유력 신문들도 특집 면을 발행하면서 국민에게 10년 전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날 추도식은 테러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WTC)가 있던 '그라운드 제로'와 워싱턴 인근의 펜타곤, 펜실베이니아주의 생스빌에서 열렸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그라운드 제로 지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가 진행됐다.

경찰이 경호를 위해 그라운드 제로 주변을 철저히 통제하고 방탄막을 설치하는 등 삼엄한 경계를 폈지만, 주변 남부 맨해튼에는 수천 명의 추도 인파가 몰렸다.

이 행사에 참석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이 테러 공격으로 "짙푸른 하늘은 암흑의 밤으로 변해버렸다"며서 "우리는 이날 일어난 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현직 대통령 뉴욕 추도식에 나란히 참석

이날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부시 전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손을 잡고 입장했다.

이들 4명은 새로 만들어진 추모공원 메모리얼 폰드 기념비 앞에 나란히 서서 묵념했다. 10년 전 납치된 항공기가 WTC 건물에 충돌한 시각에 맞춰 종이 울리고 이후 3천 명에 가까운 희생자들의 이름이 불리는 동안 이들은 유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듣고 있었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이 그라운드 제로 추도식에 함께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 미군 특수부대가 테러 주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뒤 이곳에서 추도식이 열렸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을 초청했으나 부시 전 대통령은 이를 정중히 거절, 오바마 대통령만 참석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시 전 대통령도 초청에 응했다. 이들이 자리를 같이한 것은 지난해 1월 아이티 대지진 구호를 위해 백악관에서 만난 이후 처음이다.

9·11 10주년을 맞아 전·현직 대통령이 부인들과 함께 추도식장에 나란히 입장함으로써 미국의 단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일체의 정치적 발언은 하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구약성경 중 시편 46절만을 읽고 단상에서 내려갔으며, 부시 전 대통령도 남북전쟁 당시 아들들을 잃은 한 어머니를 위로하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편지글을 인용했다.

추도식에는 테러 당시 뉴욕 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를 비롯해 블룸버그 뉴욕시장,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등도 참석했다.

◇10년 전 테러 순간 여섯 차례 묵념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여섯 차례 침묵 속에 묵념이 이어졌다. 정확히 10년 전 충격적인 테러가 발생했던 그 순간마다 묵념이 진행됐다.

테러리스트가 납치한 첫 번째 비행기가 WTC 북쪽 건물을 들이받았던 10년 전 그 시간인 오전 8시46분 첫 묵념을 시작으로, 두 번째 비행기가 남쪽 건물에 충돌한 오전 9시3분, 펜타곤 테러가 이뤄진 오전 9시37분에 희생자를 의한 묵념이 진행됐다.

이어 WTC 남쪽 건물이 붕괴한 오전 9시59분, 테러리스트가 납치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이 펜실베이니아 생스빌에 추락한 오전 10시3분, 마지막으로 WTC 북쪽 건물이 무너져내린 오전 10시28분에도 묵념이 이어졌다.

추도식 동안 3천 명에 달하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한 사람 한 사람 호명됐다. 가까운 유족들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헌사를 바치는 식으로 이어졌다.

희생자 호명에 나선 유족들 가운데는 9·11 테러 당시 엄마 뱃속에 있다가 자라서 숨진 아빠의 이름을 부른 10살의 '유복자'도 추도객들을 눈물짓게 했다.

니컬러스 고르키는 "당시 엄마 뱃속에 있어 한 번도 만나지도 못했지만, 아빠를 사랑한다"며 "당신은 내게 생명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나와 함께 삶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고 말했다.

첼리스트 요요마가 바흐의 추모곡을 연주했고, 싱어 송 라이터 제임스 테일러가 무대에 섰고, 폴 사이먼이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를 불러 애잔함을 더했다.

◇생스빌에서도 추모 인파

테러 당시 납치된 항공기가 추락한 펜실베이니아 생스빌 지역에서도 수천 명의 추도객이 몰린 가운데 행사가 열렸다.

그라운드 제로 행사를 마친 오바마 대통령 부부도 낮 12시 조금 전에 생스빌에 도착해 환영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추락 항공기 승무원들의 용감한 행동을 기린 '월 오브 네임' 앞에 흰색 장미로 만든 화환을 헌화했다. 이때 화환에서 꽃 한 송이가 떨어졌으나 미셸 여사가 이를 주웠다.

대통령 부부는 이곳에서도 연설은 하지 않았으며 방문객들과 악수를 하거나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또 희생자 가족과 만나 얘기를 나눴다.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한 동안 생스빌 추모공원에는 일부 사람들은 "유에스에이(USA), 유에스에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한 남자는 "빈 라덴을 붙잡아서 고맙습니다"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번 9월11일은 지난봄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서 미 특수부대의 비밀작전으로 사살된 후 첫 기념일이기도 했다.

◇"희망은 비극 속에서 싹터" 펜타곤 추도식

비행기 공격을 당했던 미 국방의 심장인 워싱턴 펜타곤에서도 조 바이든 부통령,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다.

10년 전 이날 테러를 당해 처참한 광경이었지만 새로 개축된 펜타곤 서쪽 건물 벽면에는 대형 성조기가 늘어뜨려졌다.

바이든 부통령은 "어떤 기념비나 어떤 추모행사, 어떤 말도 가족을 잃어 허전한 당신의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유족들을 거듭 위로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9·11 테러 당시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온 나라가 단결하고,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솔선수범했던 점을 상기하며 "9·11 세대의 헌신은 미 역사 속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것이었다"며 "희망은 비극으로부터 싹 틀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패네타 장관도 "9·11 이후 10년간 테러와의 전쟁에서 희생된 미 육·해·공군과 해병 6천200여명을 미국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이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더욱 안전해지고 더욱 강해졌다"고 말했다.

◇테러 위협 정보 속 비상경계 강화

차량 폭탄테러 시나리오가 우려되는 테러 위협 정보 탓에 9ㆍ11 10주년을 맞아 미국민은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테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도 있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도시의 공항이나 지하철 등에는 평소에 비해 경찰의 순찰이나 검문검색이 강화됐다.

9·11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해 뉴욕 WTC를 공격한 비행기가 이륙했던 보스턴의 로간 공항에서는 당시 첫 번째 테러 충돌이 있었던 시간인 오전 8시46분에 탑승권 판매, 수하물 검색 등 모든 공항 업무를 일시 중단하고 묵념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비행기 테러에 대한 우려 때문인 듯 주요 공항에는 평소보다 이날 낮 비행기를 이용하는 여행객의 숫자는 현저히 줄었다. 로간 공항 관계자는 "평소보다 조용하다"며 "오늘은 많은 사람이 여행하기보다는 집에 있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캔자스 시티 국제공항에서는 폭탄으로 의심되는 수하물이 발견된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와 3개 터미널 중 하나를 완전히 폐쇄하고 용의자의 짐을 검색하는 등 비상이 걸리기도 했으나 "폭발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연방수사국(FBI)이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또 로스앤젤레스발 뉴욕행 아메리칸 에어라인 비행기 탑승객 3명이 화장실을 잠그는 소동이 발생해 북미항공우주사령부(NORAD)가 F-16 전투기 2대를 발진시켜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착륙 때까지 호위하는 일까지 있었으나 당국은 "테러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고 AP 통신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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