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김지현·박준성·손선국 기자] 우리 민족의 대표 명절인 추석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제사를 드리고 가정의 화목을 다진다. 그러나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제사의 의미를 설명해주거나 학교‧사회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배우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가정 내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경우 추석제사로 인해 가족 구성원 간 다툼이나 불화의 원인이 될 때도 있다. 이에 본지는 종단별 추석‧제사의 유래와 의미를 재조명하고 오늘날 참 신앙인이 추석을 맞이하는 자세를 짚어본다.


◆‘추석’ 하늘에 제(祭) 올리는 세시풍속
추석은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풍요로운 가을, 햅쌀로 빚은 술과 햇과일, 음식 등을 잘 손질해 천신(天神)·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세시풍속이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때이므로 모두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햅쌀밥과 송편을 빚어 조상의 산소에 성묘하고 제사를 지낸다. 우리 선조들은 조상님이 돌아가신 기제(忌祭)에 드리는 제사 말고도 명절날 차례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

차례(茶禮)는 서양의 명절과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이것으로 단순히 먹고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도리 곧 예(禮)를 되새겨 조상님과 후손이 함께 경건하게 치르는 문화이다.

◆유교 제사 근본정신은 덕의 으뜸 ‘孝’
유교의 핵심은 인간행위의 기본이자 모든 덕의 으뜸으로 삼고 있는 ‘효’ 사상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효의 근본정신은 가장 귀한 생명을 조건 없이 주고 극진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준 부모와 선조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효는 부모 생시뿐 아니라 사후에도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통해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계실 때 섬기듯이 함(중용 19장)”이라는 정신으로 이어진다.

유교에서는 이렇듯 조상에게 지극정성으로 드리는 제사를 통해 “신령(神靈)이 흠향(歆饗; 기쁘게 받음)하게 되며 강복(降福; 하늘에서 복을 내리는 일)도 따르게 된다”고 믿는다.

▲ 유교식 추석 차례를 지내는 모습
유교 조상제사에는 사당제(祠堂祭), 이제(爾祭), 기제(忌祭) 등이 있는데 형식상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4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 부분은 마음을 집중시키고 신령의 임재(臨齋)를 준비하는 단계로 제사 전 마음을 모으는 제계(祭戒), 음식을 차려놓는 진설(陳設), 신령이 임재하게 하는 강신(降神) 등이 있다.

둘째 부분에선 효성의 상징적 표현인 제물을 드리면서 흠향을 간청한다. 여기에는 생시와 같이 정성스럽게 음식을 올리는 진찬(進饌)과 술을 바치는 헌작(獻爵) 등이 있다.

셋째 부분은 신령이 제사를 흠향하고 강복하는 의식이다. 신령이 흠향하도록 문을 닫는 합문(闔門)과 다시 들어가서 차나 숭늉을 드리는 헌다(獻茶)와 제물의 일부를 제주(祭主)에게 먹도록 하는 수작(受昨), 신령의 흠향이 끝났음을 알리는 이성(利成) 등이 있다.

마지막 넷째 부분은 신령에 드리는 의식을 끝내는 마무리 의식으로 작별인사를 올리는 사신(辭神)과 서로 축복하면서 제물을 나누어먹는 음복(飮福) 등이 있다.

유교의 모든 제사의식은 자손들이 죽은 이를 생시와 같이 정성껏 섬기려는 효성의 상징적 표현이며, 신령이 감사의 제사를 흠향하게 되면 하늘에서 자손들에게 복을 내려준다.

아울러 신령한 복을 받은 후손의 자세는 “그 복을 독점하지 않고 친척‧이웃과 나누며 더 나아가 삶 자체를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함으로써 신령에 화답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 지난 5일 조계종 전법회관 선운당에서 진행된 불교식 차례 시연회 모습
◆불교식 추석 차례 “하늘·조상에 예(禮) 올림”
추석날 지내는 차례는 유교 뿐 아니라 불교 의식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백장청규(百丈淸規)’란 책에는 차례의 뜻을 ‘한 솥에 끓인 차(茶)를 부처님께 바치고 또 공양드리는 사람이 더불어 마심으로써 부처와 중생이 하나가 되고 또 절 안의 스님과 신자가 같은 솥에 끓인 차를 나누어 마시면서 이질 요소를 동질화시키는 일심동체 원융회통의 의례가 차례’라고 설명해 두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불교식 명절 제사법을 보급해온 태고종 열린선원의 법현스님은 “차례(茶禮)는 하늘과 조상에 차(茶)를 올리면서 드리는 예(禮)”라고 강조한다.

법현스님은 “신라 경덕왕 시절 충담스님이 부처님께 차를 올렸다는 기록을 비롯해 조상님 사당에 며느리가 차를 올리도록 한 고묘(告廟) 등 역사적 근거가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특히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중된 한재 이목 선생 집안에서도 차를 올렸다는 기록과 그 후손들은 현재 숭늉 대신 차를 올려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식 가정제사 기본 지침에 따르면 차례 상차림은 간소함을 원칙으로 하고 고기·생선류는 제외한다. 육법공양물에 해당하는 향·초·꽃·차·과실·밥을 올리고 국·3색나물·3색 과실을 갖춘다. 불교 제사는 꽃을 갖춤으로써 육법공양물을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

불교에서 소개하는 가정제사 절차를 살펴보면 ▲영가 모시기-부처님과 영가(靈駕, 조상 영혼) 모심 ▲제수 권하기 ▲불전 전하기(경전 또는 게송 독송) ▲축원(문) 올리기 ▲편지 올리기(영가에 편지 올림-생략 무방) ▲영가 보내기 ▲제수 나누기로 제사를 마치고 나면 가족이 둘러앉아 음복(飮福)하며 조상을 기리고 서로 덕담을 나눈다.

불교식 축원문에는 조상의 살아생전의 삶을 간략히 되새기고 자손들의 화합과 모든 중생의 성불, 하루속히 부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등이 담긴다.

▲ 천주교에서는 추석 등 명절이나 기일에 합동 위령미사를 지낸다.
◆천주교 추석 미사 “형식보다 정성 강조”
천주교의 명절 미사는 가톨릭 전례와 한국인의 전통 제례가 융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설이나 한가위 등의 명절에는 본당 공동체가 미사 전이나 후에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조상에게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 의식을 거행함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친다.

천주교는 명절이나 탈상, 기일 등 특별한 날에는 가정의 제례보다 위령미사를 우선해 봉헌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추석에도 성당에서 ‘합동 위령미사’를 올린다.

2003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펴낸 ‘상장 예식’에 따르면 차례상에는 촛불(2개)과 꽃을 꽂아 놓으며 향을 피워도 된다. 벽에는 십자고상(十字苦像)을 걸고 그 밑에 조상 사진을 모신다. 사진이 없으면 이름을 정성스럽게 써 붙인다. 이어 성호를 긋고 성가를 부르고 독서(요한복음 등 성서구절을 선택해 봉독하기), 가장의 말씀, 부모·자녀·가정·부부를 위한 기도 등을 거쳐 차례 음식을 음복하고 성호를 긋는 것으로 차례를 마친다.

◆기독교인 추석 예배 “조상 ‘죄 사함’ 의미 담겨”
기독교는 십계명에서 사람에 대한 계명 중 으뜸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근거해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한다. 그러나 타 종교와 다소 차이가 있다면 죽은 후보다 생전에 최선을 다해 효를 실천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유교나 불교처럼 죽은 혼령에게 제사를 지내진 않지만 죽은 조상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을 비는 제사의식의 일종으로 ‘추도(모)예배’가 있다. 성경 로마서 12장 1절에 이것을 영적인 예배로 설명하고 있다.

최근 故 옥한흠 목사 1주년 추모예배와 하용조 목사 추모예배가 있었다. 먼저 추석 때 조상들을 위해 드리는 예배의 의미와 평소 돌아가신 고인을 위한 추모예배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추모예배에 참석한 지수정(42) 집사는 “돌아가신 우리 목사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막연히 기도는 하고 있지만 그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샤론교회 김현배 목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독 신앙인이 제사 곧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죄 사함을 통해 구원을 얻기 위함”이라며 “추도예배의 핵심 또한 조상들이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천교회 정요한 목사는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자 십자가를 지고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영으로 지금도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벧전 3:18~19, 4:6)하신다”며 “추도예배는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 구원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즐거운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맞아 각 가정마다 기쁨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간절하리라 본다. 지금까지 배운 각 종단의 예법에 따라 드려지는 제사(예배)가 하늘의 예를 올리고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뉘우쳐 조상의 명복(冥福)과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앙인들이 각 가정마다 드려지는 제사(예배)가 절대자에게 가족의 화목과 복을 비는 예(禮)임을 깨달았다면 경전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화목한 명절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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