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부활’ 위해 악형 면치 않아

▲ 오성바위, 갈매못 순교성지 기념관의 그림.
◆‘오성바위(Osung Bawui, Rock of the five Saints)’

다블뤼 주교(1818~1866) 일행은 한양을 떠나 형장인 오천의 충청 수영으로 향하던 중 지금의 충남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사거리에 있는 오성(五聖)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이 바위의 크기는 둘레가 11미터, 지름 4미터, 두께 1미터, 무게는 16톤이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5명의 사형수들은 호송 포졸들의 호의로 잠시나마 오성 바위 위에서 포승을 풀고 짧은 휴식을 즐겼다.

순교자들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잠시지만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면서 성가도 불렀다.

이 바위는 한때 ‘복자 바위’로 불렸으나 1984년 성인품이후 오성바위로 불린다. 지금은 서울 절두산 순교자 기념성당 정원에 있다.

▲ 순교자의 날, 갈매못 순교성지 기념관의 그림.
◆‘순교의 날(The Day do Martyrdom)’

당시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

장총으로 무장한 9명의 군인들이 관장을 호위했고 군사 200명이 죽 늘어서서 사방에서 몰려오는 구경꾼 무리의 접근을 막았다.

다블뤼 주교가 제일 먼저 칼을 받았다. 망나니는 주교의 목을 반만 쳐놓고는 돈을 더 받기 위해 관속들에게 가서 흥정했다.

그동안 주교의 머리와 사지는 뒤틀리고 경련을 일으켜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500냥에 흥정을 마친 망나니는 두 번의 칼 놀림에 안 주교의 머리가 모래 사장에 떨어졌다.

나머지 순교자들은 단칼, 혹은 두 번 칼을 휘두름으로 목이 떨어졌다.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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