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핵심 지배력 IT서 자동차ㆍ화학ㆍ금융으로 이동

(서울=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올 상반기에 순이익에서 사상 처음으로 삼성그룹을 앞서는 등 재계의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그동안 정보기술(IT)을 핵심 사업으로 삼은 그룹이 한국 재계를 지배했으나 이제는 자동차, 화학, 금융 등 다른 분야가 급부상한 결과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소프트웨어 중심의 새로운 IT환경에 적응한다면 재계 1위 자리를 머잖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 현대차 순익 1위 등극 배경
과거 현대그룹의 일부분에 불과했던 현대차그룹의 순이익이 삼성그룹을 넘어선 데는 IT산업의 업황부진이 크게 작용했다.

올해 들어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침체 등으로 IT제품의 수출이 고전했다. IT제품 매출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 정상화로 늘었으나 경쟁은 오히려 격화된 탓에 제품 단가가 급락했다.

LG경제연구원 윤상하 책임연구원은 "반도체의 상반기 수출이 무려 79.2% 늘었지만, 단가는 36.3% 하락해 전체 IT제품 수출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IT산업 업황 부진은 삼성그룹 상반기 연결기준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1%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4.3%, 순이익은 20.6% 각각 줄었다.

IT산업이 고전하는 사이에 자동차산업은 거침없이 질주했다.

신차효과 등으로 글로벌 판매가 크게 늘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고 평균 판매단가도 올라갔다. 경쟁 상대인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고유가와 대지진으로 고전한 데 따른 반사이익도 컸다.

현대차그룹의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4.2% 늘었다. 영업이익은 31.1%, 순이익은 42.5% 각각 급증했다.


◇ 삼성-현대차 영업이익은 비슷
순이익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삼성그룹을 추월했지만, 영업이익에서는 삼성그룹이 현대차그룹을 약간 앞섰다.

삼성의 영업이익은 올 상반기에 8조9천1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조7천814억원보다 24.3% 줄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6조6천335억원에서 8조6천989억원으로 31.4% 증가했다.

그 결과 두 그룹의 영업이익 차이는 2천189억원으로 줄었다. 작년 상반기 격차인 5조1천479억원을 고려하면 이제는 거의 비슷해진 셈이다.

매출액도 삼성이 현대차보다 많지만, 그 차이는 줄었다.

상반기 매출액은 삼성 109조898억원, 현대차 93조1천501억원으로 격차가 15조9천397억원이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삼성 100조9천517억원, 현대차 75조320억원으로 차이가 25조9천917억원에 달했다. 그룹간 격차가 1년 만에 38.5% 감소했다
이런 현상은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삼성의 시가총액이 지난 2일 현재 221조3천841억원으로 현대차의 140조1천639억원보다 많다. 그러나 삼성은 작년 말에 비해 44조9천755억원 줄었고 현대차는 31조1천59억원 늘었다. 격차가 크게 줄었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 두 그룹의 시가총액 차이가 줄어 지난 6월에는 자동차ㆍ조선 등 운수장비업종의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전기전자 업종의 시가총액을 넘어서기도 했다.


◇ 재계 판도 대변화
전문가들은 IT업황 부진이 당분간 계속돼 순이익에서 현대차그룹이 삼성그룹을 추월하는 현상이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교보증권의 송상훈 리서치센처장은 "자동차 산업은 전성기이지만, IT산업은 `좋은 시기'를 지났다. 제품 단가에서도 IT는 갈수록 떨어지지만 자동차는 올라간다"고 말했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엔가이드의 집계 결과, 증권사들은 지난 6월 이후 3개월간 IT업종의 올해 실적 전망치를 30% 가량 내리고 투자의견으로 부정적 전망을 유지했다.
하이투자증권 조익재 리서치센터장은 "상반기 삼성의 실적 부진은 IT업황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유럽 등 세계경기를 고려하면 내년 3분기까지는 IT산업의 어려움이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이 1위 자리를 되찾으려면 새로운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신영증권 김세중 이사는 "삼성이 애플이나 구글처럼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1993년 신경영을 외치며 도약했듯이 신사업 경쟁력이 향상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과거보다 경쟁이 심하고 산업내 경쟁력도 떨어진 상황이다"고 분석했다.

다른 그룹에서도 순위 변동이 두드러졌다.

LG그룹이 작년 상반기에 당기 순이익 6조919억원, 영업이익 5조9천543억원으로 삼성그룹, 현대차그룹에 이어 3위였다.

그러나 올해는 순이익 2조3천519억원, 영업이익 2조8천728억원으로 각각 축소됐다. 순이익 기준으로는 10대 그룹 중 6위로 밀려났다.

한화그룹도 지난해 상반기 1조3천639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6위였으나 올해는 4천326억원에 머물러 10위로 떨어졌다.

대우증권 김학균 투자전략팀장은 "과거 한국증시는 부침이 심한 IT경기, 특히 반도체 업황에 따라 좌우됐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 IT섹터에 대한 시장의존도가 낮아져 IT업종 주가가 곧 한국증시를 설명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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