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순 할머니 “내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
“수급자도 아닌데 손자들 떠맡게 돼 생계 막막”

▲ 김봉순 씨가 문짝이 떼어진 천막을 붙잡고 서 있다. 방 한 칸뿐인 천막에서 김 할머니는 손자 2명과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내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

20여 년 동안 자신의 삶은 없었다고 말하는 김봉순(74) 씨의 눈에 어느덧 눈물이 고였다. 김 씨는 그동안에 겪은 고된 생활과 세월의 흔적이라며 휘어진 손가락을 기자에게 내밀었다.

“얘들이(손자들이) 4, 5살 됐을 때 엄마가 유치원에 맡기고 가버렸어. 그때부터 정신없이 둘만 위해 살았지. 어떻게든 먹여 살리려고 말이야, 이제 한 놈은 고3이고 한 놈은 대학교 1학년인데 남들 다 하는 것도 다하고 살 수 없으니까 많이 힘들어해, 근데 어쩌겠어….”

지난달 23일 오후 3시께 가파른 언덕을 지나 창신동 판자촌에 들렀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김봉순 씨의 20여 년 세월이 묻어 있는 천막집이었다. 문짝이 떼어진 천막 안은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인데도 칠흑같이 어두컴컴했다.

그는 현재 손자 2명과 천막집에서 살고 있다. 15년 전 아들내외가 경제상황 악화로 불화가 생기면서 이혼을 했다. 이후 아들은 지인과 동업을 하려고 하다가 사기를 당해 빚을 갚으러 나가 1년에 한두 번 얼굴을 본다고.

김 씨는 집을 나간 아들 외에도 딸 셋을 두고 있다. 가난을 대물림 해주기 싫었으나 현재 딸 둘도 기초수급자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김 씨는 딸들처럼 수급자도 될 수 없다.

김 할머니는 “자식들이 있어서 대상에서 제외된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면서 “매일 매일 뼈 빠지게 일해 하루 번 돈으로 손자들과 어렵게 살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나마 딸이 낸 포장마차에서 낮에 3~5만 원을 벌 수 있었으나 그마저도 철거돼 할 수 없게 됐다.

“지금은 5년간 다녔던 의료원에도 못 나가고 있어. 요즘 정신도 오락가락해서 정신과 치료가 하나 더 늘어났는데 계속 못 가고 있어서 걱정이야. 손자들한테 짐이 되면 안 되는데….”

김 씨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방 안을 들여다보니 고3 손자가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손자에 대해 물어보니 걱정스러운 눈빛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손자가) 오늘 아르바이트 할 게 없어서 그런지,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저렇게 누워만 있어. 아르바이트할 때는 오전 12시에 학교를 가는데 선생님이 사정을 알아서인지 혼내지 않는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대학교에 들어간 대학생 손자는 얼마 전 휴학을 했다. 몇 백만 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김 씨는 “밥도 안 먹고 아침부터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는데도 등록금 감당이 안 된다”면서 “지금 바람은 다른 건 없어. 내가 건강하고 손자들이 아르바이트 힘들게 안 해도 공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한참을 기자와 얘기한 후 다시 손자가 있는 어두컴컴한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