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식 스페인 밀레니엄합창단 지휘자 (사진제공: GVM)

프로 수준 단원들의 ‘감동 하모니’
한국 민요와 가곡 50여곡 레퍼토리
어려운 한국 발음, 음성 기호로 표기

“한국 사람이 자국의 고유 민요와 가곡을 많이 모르고 있어요. 제 목표는 스페인 프로 합창단과 함께 한국 노래를 전 세계에 알리고, 합창단 내한 공연을 통해 한국 사람들이 잊어버린 모국의 노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 이들은 한국인들도 많이 알지 못하고 있는 한국 민요와 가곡을 부르는 스페인 프로 성악가들이다. 임재식 단장 겸 지휘자를 제외하고 모두가 스페인 사람인 것도 특이한데, 공연 때마다 한국 민요와 가곡을 부르고 총 50곡의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단원들을 보면 고맙고 미안해”

국회의사당 공연이 있던 지난 22일 이른 아침,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임재식 단장을 가까스로 만났다. 임 단장은 “친구 같고 가족 같은 단원들이 힘들어도 자신을 믿고 따라와 주니 고맙고 미안하고 행복하다”며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임 단장은 1999년에 새 천 년을 맞아 아름다운 목소리를 합해 노래하는 그룹 ‘그루뽀 보깔 밀레니엄(Grupo Vocal Millennium, 밀레니엄 합창단)’을 창단했다.

스페인 국영 라디오·TV방송 합창단인 ‘RTVE’ 출신의 프로 수준 단원들은 임 단장과 한 배를 타고 끊임없이 노력해오고 있다. 스페인어에는 없는 우리나라 조사 중 ‘의, 는, 을’ 등의 발음이 어려워 발음 표기를 음성 기호로 표현해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도록 수없이 반복 연습하고, 내용 전달을 위해 임 단장의 곡 해석에 대한 이해도 수반이 돼야 했다. 하지만 프로인지라 박자와 리듬감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임재식 단장 겸 지휘자(가운데)와 스페인 단원들을 지난 22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났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아름다운 한국 노래 전할 사명(司命)

임 단장은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재학 중 돌연 스페인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의 성악가들 대부분이 스페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스페인 노래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스페인 왕립음악원 재학 시절 한국 노래를 무시하는 유럽인들에게 아름다운 한국 민요와 가곡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86년 공채로 합격한 마드리드 시향 시절에 단원 중 한 명이 한국 곡을 가르쳐 달라고 했던 것이 합창단 창단의 계기가 됐다.

“소프라노 루르데스 씨가 한 오디션을 보게 됐는데 자유곡으로 한국 곡을 부르려 하니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생전 즐겨 부르시던 ‘동심초’를 가르쳐 줬는데 아주 잘하더라고요. 그때 ‘아 이거다!’ 싶었죠.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스페인 프로 성악가들을 직접 가르쳐 한국 노래를 부르게 하리라.’”

스페인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현지인에게 외국인은 이방인에 불과하다. 임 단장이 스페인 단원들을 지휘하고 통솔하기까지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시련과 아픔, 열정을 다한 노력이 수반됐다.

“15년 동안 한국 노래를 알리기 위한 꿈을 키웠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얻고 실력을 갖추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했죠.”

이렇게 그의 열정과 노력으로 창단된 것이 스페인 밀레니엄 혼성 합창단이다. 21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지난해 한국-스페인 수교 60주년 기념으로 코르도바, 바르셀로나 등에서 기념공연을 했으며, 이후 국회 초청 연주, 광복절 62주년 초청 연주 등 셀 수 없이 많은 연주를 소화했다.

▲ 스페인 밀레니엄합창단 내한 공연 (사진제공: GVM)

◆“한국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필요”

임 단장은 예산의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프로 가수들은 돈이 받쳐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합창 공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예산 문제죠. 한국의 모 기업에 직접 찾아가 네다섯 번의 브리핑과 설득 끝에 후원을 겨우 받기 일쑤죠.”

그는 합창단 초기 에피소드를 하나 공개했다.

“한국 노래를 부르니 한복을 입기로 했는데, 서양 체구의 여성 단원들에게 맞는 한복을 구할 수 없었어요. 당시 장인어른이 시무하고 있는 교회 집사님들의 한복 중 큰 옷들을 골라 입었는데 결국 기장과 색이 제각각인 옷을 입고 무대에 섰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무대를 본 무명의 한복디자이너가 선뜻 단원들에게 맞는 맞춤 한복을 선물했고, 지금도 기장이 줄거나 늘면 수정해주곤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불렀던 곡을 반복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공연을 많이 하니까 ‘불렀던 노래를 또 하냐’는 등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따뜻한 말 한마디 듣고자 공연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두 시간 연주를 위해 일 년을 고민하고 준비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상처가 된다”고 심정을 밝혔다.

매년 스페인과 한국을 오가며 한국 노래를 알리고 있는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은 올해도 어김없이 내한해 오는 31일 새로운 장르의 공연을 선사한다. 이들은 국립국악관현악단 반주에 맞춰 한국 가곡을 부를 예정이다.

임 단장은 “연습 때는 피가 마를 정도로 힘들지만, 무대에 오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며 “열악한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만큼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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