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넌센스 퀴즈 하나. 흑인들이 달리기를 잘하는 이유는?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이들은 “아프리카 밀림에서 사자 등 맹수에게 잡혀 먹지 않기 위해 어릴 때부터 죽기 살기로 달리기를 했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흑인들의 원초적 태생지인 아프리카와 밀림의 제왕인 사자 등을 연결시켜 흑인들이 육상의 기초인 달리기에서 왜 잘하는지를 희화화한 것이다. 한마디로 생존수단이라는 이유이다.

물론 정답은 따로 있다. 신체적인 조건이 탁월한 데다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열심히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세계 대부분의 흑인들은 어릴 적 출세하기 위해 스포츠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성공하면 부와 명예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및 캐나다의 흑인선수, 영국의 흑인선수, 카리브해의 흑인선수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칼 루이스가 그랬고, 88서울올림픽에서 약물파동을 일으킨 벤 존슨이 그랬고, 현재 100M 세계최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육상 최단거리 판도가 미국과 영국 등을 거쳐 카리브해의 소국 자메이카로 이동하게 된 것은 흑인들끼리의 치열한 경쟁과 도전의 결과이다. 아프리카의 자연적 환경에 순응한 결과였다는 넌센스 퀴즈의 우스개 답처럼 흑인들이 ‘헝그리 정신’으로 어려운 사회적 환경에 잘 적응해 뛰어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으면 총격의 표적이 된다’는 옛말도 있다. 세계 육상 최단거리는 항상 선두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총알탄 사나이’ 흑인들 간의 스피드 경쟁무대였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100M 기록은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새로운 선수에 의해 갈아치워졌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100M 결승. 처음으로 현장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들의 경쟁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전년도 9초8의 벽을 깨뜨린 미국의 모리스 그린이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출발선에서 긴장한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그린의 모습이 스타디움 카메라에 잡혔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그린은 초반부터 전력질주, 순식간에 결승선을 1위로 통과했다.

7만여 관중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지켜보다가 그린의 1위가 확정되자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기자석에서 지켜봤던 필자는 눈 깜짝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간이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거구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TV에서 볼 수 없었던 선수들의 생생한 질주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린의 세계기록은 2005년 자메이카의 아사파 파웰이 9초77을 기록하면서 깨졌고 이후 역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에 의해 또다시 깨졌다. 볼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경기 도중 신발끈이 풀어져 전력질주를 다 하지 않고도 9초69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1년 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초58로 우승하며 또다시 자신의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다. 명실상부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번개’라는 별명을 얻었다.

볼트의 모국 자메이카는 세계 육상 최강국이나 인구 250여만 명의 소국으로 국민소득이 6천여 달러에 불과하고 빈부격차가 심하고 실업률이 10%를 넘는 카리브해의 가난한 나라이지만 돈이 들지 않는 육상 경기가 ‘국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는 27일부터 열리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볼트의 세계신기록 경신 여부이다. 개막 다음날인 28일 오후 8시45분 세기적인 대결을 펼칠 볼트가 세계신기록을 다시 세우고 우승을 차지한다면 세계 스포츠사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맞이할 것이다.

스포츠도 인간과 함께 진화를 계속해왔다. 육상 단거리 선수들은 기록도전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으며 그 결과물이 기록단축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100M에서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볼트를 비롯한 흑인선수들의 무한질주는 절대빈곤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그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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