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보스턴 주재기자

미국에서는 대학을 가는 것이 개인의 선택사항이므로, 돈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래서 스스로가 결정할 자유선택이기에 돈이 없어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혹은 대학을 중퇴했다 해도, 대학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혹은 포기한 것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혹은 직업 기회를 얻지 못할 만큼의 큰 문제가 되거나 불편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대학교육을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꼭 대학교육이 아니어도 시간이 좀 더 걸릴지라도 스스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고, 일을 하면서 얻는 인생 공부와 경험도 더 값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수용적이고 원만한 사회적 분위기와는 달리, 2004년 미국 대학 보도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4년제 대학 졸업생 66%가 빚을 안고 졸업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점점 늘어나는 수치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마디로 교육의 나라, 미국에서조차도 대학을 가길 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고, 대학졸업장을 따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비싸고 부담되는 학비에도 미국 대학생들이 모두 조용하다는 것은 다시 한번 신기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미국과 우리의 처지와 철학, 그리고 문화가 다르므로 똑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고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열정만큼은 우리나라가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남부럽지 않은 선두주자라 할 정도로 뜨겁고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비슷하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거는 기대만큼 그 투자나 선택의 폭이 미국에 비해 너무 적어 보인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날로 대학졸업자를 요구하고 있는데, 날로 더해가는 이 교육에 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되는 그 서비스가 너무 열악한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학생들의 불만이 터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미래 교육에 거는 기대가 많은 만큼 그에 대한 투자도 더 많아져야 하는 것이 논리적인데 기대만 클 뿐 그에 대한 투자는 미흡하다면, 앞으로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 아니겠는가? 고급 신발을 걸치지 않아도 무시당하지 않고 공평하게 사회생활할 수 있는,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만일 그런 사회를 바로 기대할 수 없다면, 국가가 대학생들에게 걱정 없이 학교만이라도 제대로 다닐 수 있도록 그에 알맞은 기관의 설립, 제도의 확충, 그리고 서비스의 확대를 실시하여 다각적인 방향과 형태로 그 선택의 폭과 기회를 넓혀주어야 그 불만도 좀 사그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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