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500~600년 전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산업혁명 이래 굳어질 서양의 패권 시대를 예측하지 못했다. 그 당시 유럽은 흑사병과 갖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을 위시로 한 서양은 곧 보란 듯이 맹위를 떨쳤다. 퍼거슨은 이 지점에서 ‘그토록 짧은 순간에 서양이 패권을 잡은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우리가 15세기에 세계 일주를 했다면 서유럽의 황량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411년 서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 절반을 잃고 이제 막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도 다시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으며 걸핏하면 싸우려들던 서유럽의 다른 왕국들도 상황은 거기서 거기였다.

이제 다른 쪽을 살펴보자. 베이징이다. 1500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인구 60~70만을 자랑했던 베이징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상위 10곳 중 단 한 곳, 파리만이 유럽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에 상황은 역전됐다. 이즈음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열 곳 중 아시아권은 도쿄뿐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1990년에는 보통의 미국인이 중국인보다 73배나 잘살았다.

퍼거슨은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요인을 책을 통해 장엄하게 풀어낸다. 그는 그 답을 경쟁·과학·재산권·의학·소비사회·직업윤리에서 찾는다. 퍼거슨은 패권을 장식한 요체가 지식의 축적이었고, 세상을 움직인 것은 앞서 소개한 6개의 영역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퍼거슨에 따르면 변화의 시작은 위기에서 시작됐다.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군비경쟁을 촉진시키면서 기술 발전의 토양을 조성했다. 교역은 물론 조세제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비등비등한 국가들이 힘의 불균형을 이루고 경쟁을 발생시키면서 발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조공관계를 중심으로 하나의 제국과 제후국으로 구성된 동양은 안정이라는 편한 상태를 유지하며 상대적으로 도태되고 말았다.

더 나아가 책은 각자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현재의 서양을 낳았다는 지론에 다다른다. 퍼거슨의 눈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서구의 몰락 현상의 원인을 찬찬히 뜯어보며 동서양의 미래를 전망한다.

퍼거슨은 2007년 여름 시작된 금융위기는 이미 확립되어 있던 유럽의 상대적 쇠퇴를 한층 가속했다고 분석한다. 여기서, 문명 붕괴는 대부분 전쟁뿐 아니라 재정 위기와도 연관돼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렇듯 서양 문명의 쇠퇴를 진단하면서도 퍼거슨은 서양 문명에 대한 옹호를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서양 문명 패키지는 여전히 인간 사회에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사회·정치적 제도를 제공하고 있다. 이 제도들이야말로 21세기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각종 문제를 해결할 인간의 창의력을 발산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서양 우월주의가 진득하게 묻어나긴 하지만, 그의 다음 제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서양 문명을 향해 다가오는 가장 큰 위협은 다른 문명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 그리고 그것을 더욱 부추기는 역사적 무지다.”

니얼 퍼거슨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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