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돌을 맞은 광복절 기념행사가 지난 15일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속박에서 해방된 그날을 기념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화풀이를 하자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일련의 시위성 기념행사가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다는 점이다. 정의 대신 모두가 압력과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오늘의 현실을 단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하루였다. 그 소리는 너무나 커서 자칫 통일이라도 곧 되려나 싶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66년 전 광복(光復)은 계층도 이념도 종교도 하나 되어 한목소리를 낸 결과임을 잊어선 안 되며, 그 역사적 진실을 억지로 외면하려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다시금 추구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은 진정한 광복이다. 일제의 속박에서 이제 벗어났다는 안일한 상태의 표면적 광복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구태의연한 생각과 의식과 가치관에 매여 종노릇하며 살아왔다면, 이제 나를 얽매어 놨던 구습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제2의 광복(光復) 즉, 이면적 광복이 우리에게 남아 있음을 제발 깨닫자.

남북의 통일을 말하기 전에 먼저 나와 너, 지역 간, 계층 간 하나가 돼야 하고, 남과 북의 통일이 있기 전에 편협적이고 편파적이었던 우리의 의식과 가치관의 전환이 선행될 때 비로소 남과 북의 통일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이뤄지는 남과 북의 통일이 아니라면 제2의 광복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생각 외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강퍅한 세대의 주인공이 바로 나임을 인정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할까. 그래도 이 나라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내며 거짓된 광복과 가증한 통일을 소리 낼 때, 자기의 소리는 없고 오직 나라의 소리, 민족의 소리, 세계의 소리, 하늘의 소리, 평화의 소리를 함께 내던 한 단체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그 단체의 주인공은 ‘만남은 세계로, 세계는 만남으로’를 외치며, 피부색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라는 슬로건으로 하나의 지구촌을 역설하던 바로 순수 민간자원봉사단체 ‘만남’이었다.

이들이야말로 생각이 죽고 의식이 죽고 무가치관 속에 방황하던 우리의 생각을 다시 꼬집어 살아나게 한 이 시대의 선구자(先驅者)요 구세주(救世主)다.

또 이들의 희생으로부터 나오는 실천적 봉사정신은 암울한 이 시대의 표상(表象)이며, 그동안 구호로 일관돼 오던 행사들과는 사뭇 다르게 대안까지 내놓으니 우리가 모색해 가야 할 방향과 지표임이 틀림없는 듯 보였다.

‘세계 평화’라는 광복기념축제의 이름과도 걸맞게 용산전쟁기념관을 꽉 메운 3만여 명의 참석자들은 회원과 내국인들만이 아니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른 2천여 명이 넘는 지구촌 가족이 함께 광장을 꽉 메우며 심지어 무대 앞 땅바닥에까지 앉아 행사의 주인공이 돼 가는 모습은 ‘하나의 지구촌’이란 말이 요원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이 단체의 공식 구호인 ‘빛과 빛의 만남은 이김’이라는 구호의 의미가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칠흑(漆黑)과 같은 깜깜한 밤에 한 줄기 빛이 있었고, 그 빛은 또 하나의 빛을 만났고, 그 빛은 또 다른 빛을 만나 비춤으로 어둠은 그만큼씩 물러나고 있음을 이들은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결국 광복(光復) 즉, 온 세상은 이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을 회복해 가는 역사가 있게 됨을 지구촌을 향해 선포하는 의미를 갖는 데 충분했다고 봐진다.

지금까지 그 어떤 단체도, 국가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들이 하나 되어 이루어냈다면 그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수가 있겠는가.

자기의 고집과 아집에 분별력을 잃고 살아왔다면 이젠 제발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는 회복의 역사가 있어야 하겠다. 행사를 마치며 23년 전 88올림픽 때 온 세계가 ‘코리아나’의 열창과 함께 불렀던 ‘손에 손잡고’와 ‘We are the world’를 부르던 그들은 진정 이 회복의 역사에 선구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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