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지난 10일 축구 한·일전에서 한국대표팀이 치욕적인 3점차 대패를 당한 것을 보면서 이제는 한·일전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한국 국민들 사이에는 축구를 비롯한 모든 종목에서의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맹목적인 정서가 지배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일전은 최고의 빅카드로 간주돼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축구의 경우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이 우위를 지켜와 한·일전의 대표적인 효자종목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과거 축구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축구에 문외한인 이들까지도 환호하며 국민적인 축제로 즐겼다. 마치 전쟁에서 일본에게 승리를 거둔 것 마냥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필자도 여기에서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2003년 5월,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의 초대로 중앙 언론사 체육부장단의 일원에 속해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한·일 정기전을 관전한 일이 있었다.

1-0으로 한국팀이 승리를 거둔 후 정 회장 일행과 체육부장단은 도쿄 아카사카 근처의 유명한 이자까야(선술집)에서 질펀한 승리의 축하만찬을 가졌다. 2002년 대선 하루 전날 노무현 후보의 지지를 철회한 뒤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마음의 상처가 컸던 정 회장은 이날 한국팀이 승리를 거두자 환하게 웃으며 회심의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필자 일행들도 ‘도쿄 대첩’의 승리자가 된 듯 환호하며 정 회장과 함께 즐거운 자리를 가졌다. 축구 한·일전이 가져다 준 기쁨의 ‘카타르시스’였던 것이다. 축구에서 한국 우위가 당연하다는 착각을 들게 했을 정도로 역대 전적에서 일방적으로 앞서 나갔던 때였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일본은 한국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압도했다. 대표팀의 ‘유럽파’는 일본이 14명이나 보유해 한국(6명)보다 월등히 많다. 일본의 ‘유럽파’는 대부분 소속팀 주전으로 활약하며 일본축구의 새로운 색깔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일본은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에서 16위를 마크, 한국(28위)보다 높다. 한국이 FIFA 랭킹에서 일본을 앞선 것은 7년 전인 2004년 7월(한국 20위, 일본 24위)이 마지막이다. 또 한국은 1960년 이후 아시안컵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세 차례(2000년, 2004년, 2011년) 아시안컵을 제패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일본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이탈리아 출신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은 다양한 전략과 전술로 전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이미 탈아시아 수준을 넘어서 정통 유럽형 축구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 한국팀 수준은 어떤 상태인가? 이번 삿포로 참패에서 드러났듯이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 이후 그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해 전력불안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번 한·일전에서 한국팀의 전력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전력의 핵 이청용이 부상으로 이탈했고, 손흥민이 고열로 빠졌고, 지동원은 잉글랜드 소속팀 선덜랜드의 적응을 위해 제외됐다. 게다가 레프트백 김영권과 박원재가 연이은 부상으로 실려 나가는 악재까지 겹쳤다.

하지만 이미 한국선수들이 이미 기술에서 일본에게 상당히 밀린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투지, 스피드, 체력을 앞세워 일본에게 앞섰으나 이제는 이러한 기존 스타일 갖고서는 일본의 벽을 결코 넘을 수 없음을 이번 삿포로 참패가 말해주고 있다.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현 상태대로 간다면 앞으로 한국축구는 일본의 ‘밥’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축구의 현재 모습은 결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십수 년간에 걸쳐 일본축구는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체계를 갖추고 전 연령대에 걸쳐 선수들의 개성에 맞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개별적인 훈련과 개인 지도방식을 행하고 있는 한국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한·일전에서 한국축구가 이제는 우위에 있다는 자만심을 떨쳐 버리고 일본축구의 우세를 인정하고 차근차근히 기술을 보완해나가는 장기적인 청사진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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