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동방 예루살렘… 영적으로 깊은 영향 끼치는 나라”

[천지일보=김지현 박준성 손선국 기자] ‘빛의 회복’이라는 뜻인 ‘광복(光復)’을 기념하는 광복절이 올해로 66돌을 맞는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잃어버렸던 나라를 되찾은 지 한 갑자(甲子)를 훌쩍 넘고 6년이 지났다.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수많은 외세 침입과 핍박을 이겨낸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칠흙같이 어두웠다.
그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종교인이 있었다. 이번 기획에서는 그 중 기독교 사상을 중심으로 광복의 영적 의미를 짚어본다.

◆‘빛’과 ‘광복’ ‘광복절’의 영적 의미
‘광복절(光復節)’은 일본에게 나라(국가;國家)와 말(국어;國語)을 빼앗기고 삶의 희망마저 잃어버린 우리 민족이 어둠 속에서 빛을 되찾은 날이다. ‘광복(光復)’이란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서 잃었던 국권(國權)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빛’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평화 기독교 선교회 김요셉 목사는 “기독교 성경 요한복음에 보면 빛은 ‘생명(生命)’이며 그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요 1:1~4)고 쓰여 있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생명을 얻어 무덤과 같은 사망(死亡)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어두움에서 빛을 되찾는 광복”이라고 설명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됐다. 시린 핍박 속에 기나긴 45년을 어둠 속에서 투쟁하던 우리 민족은 마침내 이 해방의 날을 맞이하게 됐다. 대한민국은 독립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광복절은 우리 겨레가 ‘나라’와 함께 빛과 소망을 다시 찾은 날이다.

빛을 되찾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노력
▲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
우리나라에 8.15광복이 있기까지는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린 이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독립운동가’라고 부른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들 중에는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지는 독립운동을 위한 기독교계의 노력을 조명하기 위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정은 수석연구원을 만났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특징이 있다면 무력투쟁이 아닌 평화시위였다는 것과 자유‧평화‧박애를 추구하는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이 연구원은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까지 불사한 많은 기독교인을 극찬했다. 그 중 대표적 예로 신석구 목사에 대해 “그는 종교인으로서 정치운동인 독립운동 참여를 놓고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 ‘찾을 수 있을 때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 아닌가’라는 답을 얻은 이후 일제의 갖은 탄압과 회유에도 광복의 그날까지 신념을 지켜나갔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1905~1910년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불안에 빠진 국민들은 기독교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교회‧교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종교는 점점 대중의 삶 속으로 파고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종교계 부흥에는 ‘새로운 시대‧문명’이라는 대중들의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종교인들은 종교적 양심으로 인해 폭력적 지배 질서에 맞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무력 투쟁은 불가능했고 다수의 집단적 평화시위가 유일한 대안이었기에 누군가는 나서서 대중에게 동기를 불러일으켜야 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그 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민족대표 33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개신교‧불교‧천도교를 포함 각계각층을 연대해 대중의 지지를 얻어 독립운동을 대중화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연구원은 “이들의 사상은 오직 ‘자유‧정의와 인도‧인류평등’이라는 이상주의였다”며 “이는 이들이 발표한 기미독립선언서에 잘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미독립선언서에 대해 “전 민족이 독립운동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남녀노소‧빈부귀천 구별 없이 자발적 참여로 평화시위운동을 벌이는 기폭제가 됐다”면서 “정의와 인도, 인류평화를 갈구하는 국민들의 높은 도덕적 표준과 동양평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한 염원을 잘 담고 있다”고 평했다.

“위국기도를 통한 국권회복의 강한 소망”
▲ 평양 장대현교회.(사진 출처: 한국기독교사진 100년)
◆초대교회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한국의 평양대부흥운동
초대교회 때 오순절의 강림(행 2장)으로 부흥이 일어났듯이 한국에서도 1903년 원산에서 화이트 선교사가 집회를 인도할 때 성령의 체험을 가지는 부흥운동이 시작됐다.
이후 1907년 1월 평양에서 블레어 목사가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며 같은 해 길선주 목사가 서울에서 경기도 사경회를 인도했다. 1910년 평양의 한 교회에서는 한 주 만에 4000명이 세례를 받았고 수천 명이 교회에 새로 등록했다. 1911년엔 김익두 목사가 말씀의 은사를 받아 한국 기독교 초기 부흥에 절정을 이뤘다.

◆길선주 목사를 통해 보는 광복 “신앙의 힘으로 나라 되찾자”
▲ 길선주 목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광복을 위해 노력했던 우리나라 독립투사들, 그 중심에 민족대표 33인이 있었다. 그 중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이끌었던 길선주 목사가 신앙을 의지해 걸어온 독립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조명해본다.

길선주 목사는 1919년 3.1운동 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2년간 옥고를 치르다 생을 마감한다. 그는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기미독립선언서’에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기도 했다. 길 목사가 이렇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길선주 목사는 1869년 3월 15일 성균관 박사 길재(吉再)의 19대손으로 평남 안주군 성내 후장동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한학을 배운 길 목사는 어느 순간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영적인 세계를 갈구하며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한다.

그는 19세 때 처음으로 관성교(觀聖敎; 삼국지의 관우를 높이는 종교)에 심취해 영적 체험을 했으나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보다 깊고 심원한 종교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선도(仙道)로 가게 된다. 그는 불교나 도교에도 귀의해봤지만 진정한 만족함이 없었다. 그는 “많은 종교를 통해 도의 성취를 위해 노력해봤지만 항상 허무한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다.

길 목사는 결국 기도하는 가운데 당시 우리나라에 널리 전파된 예수교의 말씀을 듣고 이전의 교리보다 높은 차원이라 여겨 귀의하게 됐다. 이후 그는 성경을 널리 전하며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길선주 목사는 대부흥운동 전후 자신의 삶 속에서 위국 기도를 통한 국권회복의 강한 소망을 보여줬으며 그에게 있어서 나라 사랑과 주님 사랑은 분리될 수 없었다.

그는 의병운동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 중요한 때라고 판단해 평화주의적인 위국기도회를 시작했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교회 전체에 나라를 위한 기도가 불일 듯 일어났고 나중에는 수천 명이 모여 연일 기도회를 가졌다. 후세대는 길 목사에 대해 “위경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노력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사람이었다”고 평한다.

◆탄압 속 신앙 지키는 북한 동포들
北 지하교회 숨소리까지 죽이고 기도하는 현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대부흥 현장에 있던 존 모트는 “한국이야말로 영적 동력이 대단한 나라이다. 선교사들이 교파를 초월해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 연합과 일치의 본보기 나라”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마펫 선교사.
마펫 선교사는 “한국(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 되어 중국·일본 더 나아가 러시아에까지 영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소개한 문서도 전해지고 있다. 광복 6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평양의 신앙 현실은 숨소리까지 죽이고 기도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은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와 믿음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실상은 자국에 이익이 되는 경우 외에는 모든 종교적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종교 자유는 ‘북한 내에 존재하지 않다’라는 게 국내외 종교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북한 헌법은 ‘어느 누구도 외국세력을 끌어들이거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국익에 반하는 모든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종교도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들어 후원을 받기 위해 몇몇 종교조직의 활동을 허용해왔다. 1988년 평양에 세워진 두 개의 개신교 교회와 하나의 가톨릭 성당, 그리고 종교적 활동이 허용되는 몇몇 사찰이 있을 뿐이다.

이는 자발적인 종교단체가 아닌 정치적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러한 조직들은 외국교회나 국제구호단체들을 북한에 연결하는 중간기구로 이용되고 있다.

북한은 적은 수의 신학생이지만 개신교 신학교도 있다고 선전한다. 또 500개의 주택교회(House Church)에서 예배를 보는 1만 명의 교인이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인정하지 않는 선교나 종교 활동을 하는 이들은 체포·구금 등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으며 상당 부분 정치법수용소에 강제 수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버릴 수 없는 동포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다. 북한 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종교탄압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하교회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하교회 성도들은 당국에 발각되면 처형까지 당할 수 있는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국무부에서 발표한 ‘국제종교자유에 관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어 5년 연속 ‘특별우려대상국’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에 본부를 둔 ‘순교자의 소리’(Voice ofMartyrs)의 토드 네틀턴 공보실장은 지난해 11월 ‘자유아시아 방송’에서 북한 지하교회의 성장세를 알렸다. 그 수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네틀턴 공보실장은 “지하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주로 자유와 식량을 찾아 중국으로 탈북 했다가 기독교를 접하고 북한으로 되돌아간 북한주민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내 북한선전문가로 활동하는 한 관계자는 “종교탄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가는 북한 지하교회 신도들을 남한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도와야 할 때”라고 언론을 통해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선교선문가들은 북한과 왕래가 자유로운 중국 내 북한사람을 돕는 방법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진정한 광복의 길은 “말씀 있는 교회 찾아가는 것”
66돌 광복절을 앞둔 오늘날 진정한 종교적 광복은 무엇인가.
이영수(47) 선교사는 “말세를 맞아 기독교 세상이 부패하고 그 중심 세력이자 대표단체인 한기총을 해체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게 교계의 현실”이라며 “종단별, 교단별 온갖 비리와 금권선거 등 기독교 본래의 정신에서 벗어난 사건들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부평교회에 다니는 조경희(43) 집사는 “말씀을 들으러 다른 교회에 가려고 하면 교회에서 감시하며 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여도 진정한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온누리교회 박혜경(35) 집사는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현실 가운데 올바른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제대로 신앙을 지켜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며 “말씀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는 것밖에는 다른 광복의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교회 신순일(51) 집사는 “빛과 같으신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지막 때 무덤에서 나와 생명의 부활을 얻는다는 말씀을 성경 요한복음 5장에서 봤다”며 “하지만 신앙생활 30년 동안 여러 교회를 다녀봐도 성경에 맞는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목사는 찾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