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또다시 미국에서 만들어진 위기의 먹구름이 전 세계를 뒤덮으면서 지난 열흘간 글로벌 경제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미국발 먹구름을 만든 주범은 비틀거리는 경제와 빚더미에 오른 나라 곳간. 여기에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 조짐이 가세했고 굴욕적인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금융시장을 혼돈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근본원인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가져온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시 민간 부실을 덮으려고 정부가 뿌린 돈이 재정 위기라는 정부 부실로 옮아붙었다는 것이다.

회생하던 세계경제는 3년만에 또 끝모를 터널의 초입에 서 있는 형국이다.

◇美경제 반짝하더니 또 부진‥커지는 더블딥 우려
직접적 원인의 선후를 따지자면 미 경제의 더블딥(이중침체)이 먼저다.

미국 경제는 연초 예상보다 선전하며 주목을 받았다. 1∼3월 산업생산이 전년 동월 대비 5%대 증가를 이어갔고 소매판매도 8% 안팎 늘어났다.

그러나 성장률은 당초 1분기에 전기 대비 1.9%로 봤다가 0.4%로 조정됐고 2분기에도 시장 예상을 훨씬 밑도는 1.3%에 그쳤다. 정부소비와 투자가 1분기에 5.9% 감소한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7월 지표는 더 나빠졌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 지수가 50.9로 2009년 7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소비자심리지수도 63.7로 급락하며 2009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주택시장과 고용시장에도 냉기가 여전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급전직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10월에 2.3%로 봤다가 연초 미국 경제가 호조 조짐을 보이자 지난 1월 3.0%로 올렸지만 지난 4월 2.8%에 이어 지난 6월에는 2.5%로 낮췄다.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JP모건 등 주요 투자은행은 6월말 2.4∼2.5%에서 이달초 나란히 1.7%로 내렸다.

시장에선 미국의 더블딥 우려가 커졌다. 미국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세계 경제 성장률은 0.72%포인트 떨어진다는 한국은행 통계만 봐도 미 경제가 가라앉을 때 글로벌 경제는 동반 하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부채한도협상이 위기 촉발‥재정위기 도미노
이 과정에서 나랏빚이 화근이 됐다. 미국의 국채발행한도 조정협상은 극적 타결에도 후유증을 몰고 왔다. 국채발행한도를 2조4천억달러 늘리는 법안이 지난 2일 의회를 통과했지만 세수 증대 없는 지출 삭감안은 더블딥 우려를 증폭시킨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작년 11월부터 시행한 6천억달러 규모의 2차 양적완화(QE2)를 지난 6월말 종료한 상황이기에 더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채무는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 수단이 고갈돼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스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5일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하며 불붙은 시장에 기름을 끼얹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2007년까지만 해도 60%대 초반에 머물렀지만 2009년 84.2%에서 2010년 93.5%로 증가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7일 보고서에서 올해는 99.0%, 내년에는 103.0%, 2015년 110.2%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 미국의 GDP가 14조6천580억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나랏빚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재정난에 따른 국가신용위기가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재정위기는 2009년 하반기 그리스를 시작으로 전염병처럼 번지며 재정 취약국에 '피그스(PIIGS: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아일랜드ㆍ그리스ㆍ스페인)'라는 오명을 안겼다.

피그스 가운데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는 구제금융을 받았다. 국가별 원인에는 차이가 있지만 취약한 재정 상태가 지속되다가 리먼 사태에 불을 끄고자 재정 투입을 늘린 게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G20(주요20개국) 정상은 2009년 4월 런던회담에서 2010년까지 경기 부양을 위해 5조달러를 퍼붓는 재정 공조에 나선 바 있다.

재정난에 따른 국가신용등급 강등 도미노에선 일본도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은 지난 1월27일 S&P로부터 재정 건전성 악화를 이유로 AA+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당했고 다음달 무디스는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설까지 돌면서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정부 당국자는 "2008년 리먼 사태로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미국은 민간부문이 자생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정과 통화 처방의 약발이 떨어져 경기 둔화 조짐을 보였고 재정이 한계상황에 봉착하면서 위기를 촉발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이번 위기의 주체는 정부 부문이라는 점에서 2008년과는 다르다"며 "2008년 금융기관의 어려움을 선진국 정부가 떠맡으면서 민간 채무가 정부 채무로 옮겨갔다는 게 이번 어려움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이번 위기를 선진국의 재정 건전성 위기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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