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을 위하여

조오현(1932 ~ 2018)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시평]

조오현 스님은 승려이며 시인이다. 승려로서도 많은 활동을 했고, 또 시인으로서도 의미 있는 시를 세상에 많이 내놓았다. 특히 깊은 깨달음의 세계를 시적 표현으로 구현시켜 놓은 작품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스님들의 죽음을 흔히 ‘입적(入寂)’이라고 이름한다. 혹은 ‘입멸(入滅)’이라고도 한다. 본래 이 말은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붓다와 아라한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고승의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로도 사용돼 왔다.

이 시의 제목인 ‘적멸(寂滅)’ 역시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번뇌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난 경지를 의미한다. 생(生)과 멸(滅)을 뛰어넘어, 그러므로 번뇌의 경계를 떠나 열반에 듦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 것이, 한 인간으로 살아가나 꾸물꾸물 기어가는 벌레로 살아가나, 별반 차이가 없는 삶이 된다. 두 다리를 지상에 붙이고 살다가 죽으나, 꾸물거리며 땅에 배를 깔고 기어 다니며 살다가 죽으나, 그 삶과 죽음, 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아니 스님은 스스로에게 말을 한다. 다음 숲에서는, 아니 다음 생에서는 벌레로 태어나 새의 먹이나 되어야겠다고. 두 다리 땅에 딛고 살면서, 그저 목에 힘이나 주며. 진정 의미 있는 일 하나도 못하고 살다 죽느니, 새의 먹이가 되어, 저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새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그런 삶, 그러한 삶을 스님은 염원하고 있는 모양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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