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열린 수요 시위에는 초중고생들이 방학을 맞아 많이 참석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수요 시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올 12월 성미산 자락에 개관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일본 정부는 공식 사과하라.”
불편한 몸이라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 앉아야 하지만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정오가 되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쉼 없이 외쳐왔다.

이 ‘수요시위’가 진행된 지도 어느덧 21년이 됐다. 기약도 할 수 없는 긴긴 이 집회에 할머니들을 지지하며 뛰어든 단체가 있으니 바로 37개 여성단체가 뭉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정대협은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촉구해 왔다.

981번째 수요시위도 어김없이 지난 3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이날 할머니들의 얼굴은 유난히 웃음꽃이 만개했고 가슴에는 꽃이 폈다.

▲ 정성껏 접은 종이꽃을 할머니들 가슴에 달아드리는 학생들의 고사리 손이 아름답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정성껏 접은 종이꽃을 할머니들의 가슴에 달아 드려서다. 이날은 방학기간을 맞아 초중고생 할 것 없이 학생들로 꽉 찼다.

지방에서도 올라온 학생들도 꽤 눈에 띄었다. 근로정신대 관련 영화를 보고, <20년간의 수요일>책을 읽으면서 수요시위에 꼭 참석해보겠노라고 결심했다는 광주 수완중 3학년생들은 할머니들을 위해 홍삼캔디와 편지, 댄스공연을 준비해왔다.

김준범 군은 “그동안 할머니들의 아픔에 무심했던 것을 반성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할머니께 올릴 편지도 쓰고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며 할머니들을 만나기 전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학교 강민경 양은 “책으로만 보다가 책 주인공인 할머니들을 실제로 뵈니까 살아 있는 역사 현장에 온 것 같다”면서 “영화와 책으로 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는데 할머니들의 대단한 용기에 감탄했다”고 수요시위 참석 소감을 밝혔다.

이렇게 할머니들의 수요 시위는 미래 세대들이 살아 있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역사체험 교실이 됐다.

할머니들 자신들의 아픈 과거들을 꺼내 이 같은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용기를 낸 덕분에 묻힐 뻔했던 역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할머니들이 보여준 용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20년간의 수요일>이라는 책도 작년 나왔다. 현재 이 책은 일본어판으로 출간돼 지난달 출판기념식을 끝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과 여성인권, 평화를 알릴 ‘전생과 여성인권박물관’이 올 연말 서울 성미산 자락에서 문을 열게 된다.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과 역사를 보다 많은 시민과 후세에 알리고, 해외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들과의 연대를 확산하기 위해 지난 2003년 12월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박물관은 당초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일부 독립유공단체들의 반대로 결국 5년간의 씨름을 끝내고 부지를 옮겼다.

올해만 9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사망하면서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게 된 정대협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 소재 단독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새 박물관 부지가 공개되던 지난달 21일 현장을 찾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길원옥, 이순덕 할머니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009년 쌈짓돈을 모아 1000만 원을 기부했던 김복동 할머니는 “박물관이 국민들의 역사 공부방이 됐으면 좋겠다”며 “박물관이 완공될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평소 “박물관이 하루빨리 세워져서 피해자들의 이름이라도 남겨 후세에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박물관 건립을 고대했던 길원옥 할머니는 정부의 지지를 요청했다.

이 박물관은 대지 규모 약 350㎡로 지상 2층, 지하 1층 주택으로 총 16억 원을 들여 매입했다. 정대협은 세계인권선언일인 오는 12월 10일을 개관 목표로 삼고 박물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대협은 최근 9억 원을 목표로 리모델링 공사 등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섰다. 지금까지 모인 박물관 건립 기금의 대부분이 새 부지 마련에 투입돼 비용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정대협은 국내기업과 국민모금, 1만 원 릴레이 시민모금, 해외 프로젝트 모금 등의 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한편 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와 정대협 운동을 전시하는 ‘메인 전시실’과 현재 세계의 전시 성폭력 현황을 보여주는 ‘평화홀’, 기획 전시실, 평화자료실, 추모 공간 등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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