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향후 3년간 240조원 투자와 4만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지난 20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복귀 이후 내놓은 발표보다 60조원이나 증가한 수준이다. 이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 후 11일 만에 내린 결단으로, 정·재계에서 거론되는 ‘이재용 역할론’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위기 때마다 대규모 투자로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삼성의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엘지전자와 삼성전자에서 각각 근무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육성 경영전문 컨설턴트 박광수 칼럼니스트의 경험과 에피소드가 이 질문에 답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3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해외주재원 및 관련 분야를 망라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천지일보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30여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삼성전자 퇴사 후 미리넷과 태평양 임원 등을 역임했다. ⓒ천지일보

전직 삼성맨의 삼성이야기

<7> 지역전문가 제도를 즉각 시행하라 

이건희 ‘인재제일’ 주창하며 시작

해외수출을 성장 원동력으로 판단

 

현지인 같은 경험으로 국가 이해↑

1~2년간 문화·인맥 등 자율 습득

30년간 80여개국·5000여명 양성

 

해외 각국에 네트워크 구축 결과

현지화로 파견국 각각 시장점유해

언론 등 삼성 성공 만든 제도 평가

ⓒ천지일보 2021.10.14
ⓒ천지일보 2021.10.14

삼성그룹은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정한 사훈 ‘사업보국’과 ‘인재제일’ 강조를 통해 그룹을 성장시킨다.

선대 회장의 지시를 승계한 이건희 회장 역시 인재 발굴에 나서며 삼성그룹 각사의 대표이사들에게 업무의 절반은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데 우선순위를 두라고 지시한다. 이는 50년 미래를 내다보는 이건희 회장의 탁월한 경영수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한명의 탁월한 인재가 향후 임직원 1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그의 철학과도 맞닿아있다.

S급 인재에 대한 갈망이 있던 이건희 회장은 경우에 따라서는 글로벌 해외 인재를 잡기 위해 삼고초려는 기본이고 회사 전용기를 보내기도 했으며 본인보다 더 많은 연봉을 약속하는 등 적극적인 영입 전략을 펼쳐왔다.

여기에 초등학교와 대학을 각각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한 이건희 회장은 대한민국의 경제는 국내가 아닌 해외 수출을 통해 성장 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이 10년 내 도래할 것이란 생각에 세계 각국의 언어는 물론 문화·경제·정치·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찾는 방안을 찾던 이건희 회장은 ‘지역전문가 제도’를 고안한다.

 ◆반대 팽배… 이건희 회장 고함에 시작

이건희 회장은 1973년부터 ‘글로벌 삼성’을 주창하며 지역전문가 제도 신설을 지시했다. 지역전문가 제도란 보통 3년차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발해 1~2년 동안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히도록 지원하는 자율관리형 해외연수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제도는 곧바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에 그가 부회장이던 1986년 “제도를 만들라 해도 내가 힘이 없어서인지 안 만든다”고 고함을 치며 이를 다시 지시한다. 이듬해 회장이 된 그가 사장단 회의에서 다시 언성을 높이고 소리친 후에야 지역전문가 제도가 시행됐다고 한다.

왜 이건희 회장의 지시가 처음부터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을까?

사실 1987년 이건희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지역전문가 육성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을 때만 해도 핵심 임원진들은 그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선 파견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지역전문가에게 급여 외 각종 현지 체류비가 100% 지원되고 일을 하지 않는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1인당 많게는 3억원 가량 투자해야하기 때문이다. 한 해 약 300명을 지역전문가로 파견하면 연간 800억~900억원의 거액을 투자하게 되므로, 이는 시기상조라는 반대 의견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사장단을 강하게 질책했다. “국제화, 국제화 하지만 삼성그룹 내 국제화된 인력이 부족해 21세기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수 있다”는 그의 우려는 이 제도를 더욱 밀어붙이게 만들었다.

이에 사장단은 1989년 지역전문가 20여명을 선발해 보고를 올렸는데, 이건희 회장은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느냐”고 호통을 치며 당장 비용 부담이 크더라도 200여명을 선발해 세계 각국에 파견하라고 지시한다.

ⓒ천지일보 2021.10.14
ⓒ천지일보 2021.10.14

 ◆인재 현지화로 시장점유율 1위 달성

지역전문가로 선발된 인재는 1~2년간 현 업무에서 배제되고 파견된 나라에서 자유롭게 활동한다. 월급 이외에 연간 1억원 이상의 체류비를 지원 받아 회사 업무는 일체 하지 않고 파견된 국가의 언어와 문화, 경제 상황, 법규, 인맥 등을 자유롭게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삼성만의 독특한 인재양성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전문가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지원서 경쟁과 면접 증 사내 공모를 통과해야 하고 10주간의 집중 어학연수 과정을 마쳐야 한다.

지역전문가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로 현지 언어와 문화 습득이다. 각국의 상습관, 법규, 문화와 전통, 생활 방식 등 모든 분야를 꿰뚫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인재들은 현지 국가에서 철저히 놀고, 먹고, 관광하며 적응에 나선다. 현지 학교나 연구소에 등록하거나 현지 지사에 출근할 의무도 없다. 자율적으로 나라 구석구석을 탐험하게 하려는 의도다. 다만 이들은 체류 중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체험한 내용을 사내 인트라넷에 올려 정보를 공유한다.

둘째로 파견 국가 국민들과의 교류다. 현지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것만큼 해당 국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는 현지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토대로도 활용된다.

셋째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의 기반이다. 즉 지역전문가 중 상당수가 실제로 파견된 국가에서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미래의 주재원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지역전문가로서의 활동은 향후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초기 선인적 투자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인도네시아로 파견된 인재가 현지 고위직 자녀와 결혼해 현지 전자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인도네시아 내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을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1990년대 태국에 파견된 직원이 현지 경영대학원을 다니며 쌓은 네트워크를 통해 삼성이 일본 소니와 파나소닉을 밀어내고 현지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남미총괄에 오른 홍현철 삼성전자 부사장 역시 남미 지역전문가 출신으로 남미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시장 1위로 성장하는 최대 공신이 된 바 있다.

제도 초창기 지역전문가는 선진국 위주로 파견됐다. 일본에서는 엔지니어링, 미국에서는 마케팅과 매니지먼트, 싱가포르와 홍콩에서는 금융업을 경험하게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파견국을 확대해 신흥 국가를 노린다. 향후 시장 확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삼성은 지역전문가 제도를 통해 지금껏 80여개 국가에 3500여명을 파견했으며 이들에게 든 비용도 1조원에 달한다. 파견국을 살펴보면 중국에 650여명, 일본 510명, 미국 450명, 영국 142명, 독일 132명, 러시아 100명, 인도 90명, 멕시코 75명, 브라질 57명, 인도네시아 60명, 베트남 56명, 싱가포르 51명 등과 더불어 떠오르는 시장인 인도와 러시아에는 전문가가 더 파견됐다.

작년 4월 지역전문가 파견 경험이 있는 삼성전기 전략마케팅, 컴포넌트솔루션사업부 직원들이 ‘삼성맨이 돌아왔다-지역전문가편’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삼성전기 유튜브 캡처)
작년 4월 지역전문가 파견 경험이 있는 삼성전기 전략마케팅, 컴포넌트솔루션사업부 직원들이 ‘삼성맨이 돌아왔다-지역전문가편’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삼성전기 유튜브 캡처)

 ◆“초일류 기업 성장에 발판된 제도”

이런 지역전문가 제도에 대한 투자는 10년이 지난 후 막강한 효과를 낳게 된다.

우선 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방대하고 촘촘한 국가와 지역의 정보를 만들어 냈다. 예를 들면 파라과이에서 술 마시기 좋은 장소, 미국에서 주택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 등은 물론 현지에서 사귄 인맥과 외국 정부의 정책 등과 같은 정보까지 망라한다.

지역전문가를 파견한 80여개 국가, 700여개 도시의 생생한 고급 정보를 레포트로 8만건, A4용지 4만장 분량과 사진 10만여장으로 기록돼 향후 수출 관련 업무 및 국가정보원의 자료로 활용, 국익 극대화에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 주재원들이 시간 낭비 없이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위치에서 현지 업무에 즉시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바로 이런 정보력 때문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경영 저널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2011년 7~8월호에 삼성의 지역전문가 파견이 삼성의 글로벌화 전략 성공의 초석이 됐고 향후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고 언급한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당시 코코란 크론턴빌 연수원장도 삼성그룹의 구조조정본부를 찾아 삼성이 빠른 시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10년 후를 내다보고 직원 한명에 1억원 이상을 선투자하는 지역전문가 제도’를 꼽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전 세계 어떤 초일류 대기업도 시도해보지 않은 지역전문가 제도는 향후 100년 이상 ‘세계 1등 전자기업’으로 삼성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정리 = 이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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