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에서

유준하(1947 ~  )

이승의 무게는 가랑잎 하나

저승의 무게는 가랑잎 하나

이승과 저승의 무게도 가랑잎 하나

 

[시평]

공자(孔子)의 제자 계로(季路)가 공자에게 묻기를 “감히 죽음에 관하여 묻겠습니다(敢問死).” 하니 공자 대답하기를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죽음을 모른다는 말씀이기보다는 죽음과 삶이 하나라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의미를 지닌다.

시인은 태어나 사는 이승이나 죽어서 가는 저승이나 모두 같다는 공자와 같은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이승도 가랑잎 하나의 무게이고, 저승 역시 가랑잎 한 장의 무게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때의 ‘가랑잎 하나의 무게’라는 것이 삶이나 죽음이 그렇듯 가볍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삶 자체를 ‘생성과 소멸’, 즉 생과 사가 어우러져 맞물려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삶이나 죽음에 너무 집착을 하므로 일어나는 번뇌에서부터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흔히 삶이 끝나고 죽음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이 끝나고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이미 죽음이 깃들어 있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만큼 죽음을 향해 간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커다란 죽음이라는 강물로 하루하루 우리는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죽음은 어디로 가는 걸까? 모든 죽음들은 새로운 탄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돌고 도는 ‘생사윤회’ 속에서 살고 또 죽는 것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시인의 담담한 시적 진술과도 같이, 이승과 저승 모두 가랑잎 한 장의 무게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가랑잎 한 장뿐이 안 되는 삶 속에서 아옹다옹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하며 살아간다. 무얼 조금 더 가지려고 아옹다옹하는 우리네 삶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 ‘화장장’ 앞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가져보는 것 또한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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