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주가하락.환율상승 흐름 지속 우세
금융당국 "금융위기와는 다르다" 불안심리 차단 주력

(서울=연합뉴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3년만에 국내 금융시장이 또다시 대혼란에 빠졌다.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견고하다는 평가에도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고조되면서 코스피는 큰 폭으로 하락해 이틀 연속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환율은 1,090원선까지 치고 올라왔다.

정부와 금융당국, 한국은행은 각각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불안심리가 더욱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나 시장의 동요를 당장 잠재우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혼란에 빠진 국내 금융시장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진이 이틀째 국내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9일 1천807.88로 개장한 코스피는 장이 열리자마자 큰 폭으로 하락하며 결국 1,800선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졌고, 환율은 급등해 1,090선으로 치솟았다.

국가의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 8일 기준 135bp로 하루만에 18bp(1bp=0.01%)가 급등하면서 1년2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발(發) 재정불안으로 은행들의 차입여건은 나빠지면서 하나, 국민, 신한, 우리, 기업, 산업, 수출입은행 등 주요 7개 은행의 CDS 프리미엄 평균은 5일 140.0bp에서 8일 142.9bp로 상승했다. 2010년 11월30일(143.2bp) 이후 최고치다.

그러나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기는 이르다.

민간 금융부문의 `버블'(거품)이 실물 부문에 영향을 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국가부채 문제와 실물 부문이 금융에 영향을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비해 외환보유액이 크게 증가했고 채무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인 단기 채무 비중이 낮아진 점 등은 이번 태풍에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는 지지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지나치게 수출 위주로 돌아가는 데다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점은 여전히 대외 변수에 취약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날 비상금융 합동점검회의을 열고 증시 폭락, 환율 급등과 관련해 논의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자본과 외환시장 개방도가 상대적으로 큰 탓에 대외 불안요인이 여과없이 전달돼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는 게 불가피하나 우리나라의 양호한 재정건전성과 외환보유액 등을 고려하면 대외 불안요인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환율 급등 계속될까
시장이 너무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금융당국의 지적에도 이 같은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 엄습한 공포감이 확산한 탓에 시장 상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양상으로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코스피는 오전 10시 현재 전날보다 89.66포인트(4.80%) 내린 1,779.79를 기록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역시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촉발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을 이유로 연일 급등세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일부터 9일까지 6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기간 환율은 1,050.50원에서 1,090원대로 40원가량 올랐다. 하루 평균 6.6원 이상 오른 셈이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당분간 급등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발 충격 이후 국제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달러, 금)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에 서울환시에서도 달러 수요(매수)가 꾸준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환율이 추세 상승쪽으로 가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미 등급 강등은 결국 달러 가치 하락을 뜻하는 것이고, 미 당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3차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 든다면 이 역시 달러 공급을 의미하는 것으로 글로벌 달러가치 하락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또 국내 펀더멘털 개선, 대기업 수출 호조 등에 따른 시장에 달러 공급 요인 등을 고려할 때 환율 급등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환율이 1,100원선까지 오르면 시장참가자들은 일단 가격 부담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시점에 맞춰 글로벌 주식시장의 조정이 일단락된다면 환율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재현되나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이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또다시 글로벌 위기가 몰아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그 원인이나 진행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외환위기가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국지적 위기였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나 현 상황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포함하는 전반적인 위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와 현재는 비교하자면 글로벌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월가(街) 대형 투자은행들의 파산을 시발점으로 민감 금융부문의 버블(거품)이 실물부문에 영향을 준 반면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국가부채 문제나 실물지표의 둔화가 금융에 영향을 주는 구조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2008년 금융위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8일 간부회의에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외부문과 은행부문의 대응능력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라며 "세계 경제의 불안요인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단기외채 비중을 줄이고 외환보유액을 충실히 쌓아온 점도 이번 사태를 버틸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리먼 사태 직전인 2008년 8월말 2천432억달러에서 지난 7월말 3천110억달러로 27.9% 늘었다. 1997년 말 204억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15배 넘게 올랐다.

총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중은 2008년 9월말 51.9%에서 지난 3월말 38.4%로 개선했다.

같은 기간 총외채는 3천651억달러에서 3천819억달러로 소폭 늘었지만 이는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채무건전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인 단기외채는 1천896억달러에서 1천467억달러로 감소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윤석 국제.거시금융연구실 부실장은 "외환위기가 아시아에 국한된 지엽적 문제였다면 이번 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전세계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면서 "이번 위기는 금융부문이 실물부문에 영향을 미친 금융위기와는 반대로 실물부문이 금융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흐름을 보이고 있으나 결과는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을 3천억달러 이상 쌓은 만큼 어느 정도 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 순 있으나 글로벌 위기 당시 적정 외환보유액인 3천억~3천500억달러였다면 지금은 필요한 금액이 더욱 늘어났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의외로 선전…"국제공조 필요"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국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지만, 당사자인 미국은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국채가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현재 뉴욕시장에서 미국 국채의 벤치마크가 되는 10년물의 수익률은 지난 주말보다 0.28%포인트 하락한 2.28%를 기록하고 있다.

국채의 수익률(금리)이 떨어졌다는 것은 국채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에도 불구하고 국채 가격이 상승했다는 의미여서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히려 유럽이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충격을 더 크게 받는 양상이다.

8일(현지 시각) 독일과 프랑스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 주말보다 각각 0.06%포인트와 0.15%포인트 상승했다.

범유럽 FTS유로퍼스트 300지수는 2009년 8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영국, 독일, 프랑스 증시는 물론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 시사에 힘입어 개장 초 상승세를 보였던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와 스페인 마드리드 증시 역시 급락세로 거래를 마감했다.

미국 국채 금리의 하락은 한국 정부의 CDS 프리미엄이 1년1개월만에 최고치를 경신하고 중국과 일본 증시가 패닉 현상을 보이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이날 도쿄 주식시장에서 닛케이225지수는 2.50% 내린 9,067.52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주가 하락과 위안화 강세 등 이중고에 처했다.

달러-위안 환율은 지난 1일 6.44위안대가 붕괴된 데 이어 8일에는 6.4305위안으로 떨어져 6.43위안대도 내줄 상황에 놓였다.

위안화 환율 급락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달러화의 약세와 위안화 절상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 위안화 국제화 추진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데 따른 것이다. 6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6.4%로 2008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물가 불안이 커지고 있어 중국 당국이 수입형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위안화 절상을 용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주들어 이틀간 홍콩증시의 항셍지수 하락률은 8%를 넘어 2008년 10월 이후 최대의 낙폭을 기록하고 있으며,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3.68%, 상하이A주는 3.66%, 상하이B주는 6.19% 각각 내리고 있다.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 하락에도 불구하고 금 이외에는 딱히 미국 국채를 대체할 안전자산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을 매각한 뒤 미 국채 보유를 늘리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기피 심리 영향으로 당분간 아시아와 유럽 시장 혼란이 지속되겠지만, 미국이 3차 양적완화 등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신뢰가 회복되면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금융팀장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투자금 회수에 나서야 하는 세계적 금융회사들이 작년 말부터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는 유럽과 위험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 등에 투자한 자금을 우선적으로 회수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허 팀장은 "거시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나쁘게 나온데다 미국 더블딥 우려와 신용등급 강등의 충격이 더해지면서 시장이 오버슈팅하는 경향이 있지만, 침착하게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주도하고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공조해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으면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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