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not caption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 계획’에 따르면, 현재 중2가 고교에 입학하는 2023년부터 전국 일반계 고교에 고교학점제가 도입된다. 고교학점제는 수업량 기준을 현행 ‘204단위’에서 ‘192학점’으로 졸업 기준을 낮춰, 수업량이 2023년 고교 신입생은 3년 동안 170시간, 2025년 고교 신입생은 330시간 감축된다. 학생들은 각자 선택한 수업을 이동하며 듣고, 수업이 줄어들며 생긴 공강 시간에는 대학생처럼 일정한 공간이나 도서관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025년으로 예고됐던 고교학점제 시행 시기를 갑자기 2년 앞당기면서 교육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학점제 시행을 위한 인프라 준비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지방의 고교와 중학교 2학년 학생과 학부모들은 멘붕에 빠졌다. 애초 시행 시기가 2025학년부터라 현재 초6부터 적용되니 안심하고 있던 중학생들에게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인생이 걸린 중차대한 교육체계를 교육부의 탁상공론으로 일순간에 바꾸는 건 신중하지 못한 정책 결정이다.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교사지만 대책이 너무 안일하다. 지방 고등학교는 과목 수보다 교원이 턱없이 부족해 현재도 전공과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상치 교사가 많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교사 1명이 3~4개 과목을 담당해야 해 수업 내용이 더 부실해질 게 뻔하다. 무자격 강사까지 채용해도 겨우 수요를 충당할까 말까 할 정도인데, 부족한 과목의 교사나 강사를 무슨 수로 채용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검증되지 않은 강사를 무분별하게 채용한 후에 발생하는 교육의 질 저하는 오롯이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를 거점 학교를 만들어 학교 간 이동하며 수업을 받도록 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이 또한 탁상행정이다. 지방이나 시골 학교의 경우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이동하며 버리는 시간이 많다. 학생들이 거점 학교로 수업을 듣기 위해 이동하며 생길 학생지도 문제는 학교나 교사의 힘으로 역부족이다. 지금도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학력 저하가 심각한데 온라인 강의를 활성화하겠다는 대책은 말뿐인 대책이다.

차분히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도 공교육이 엉망인데 이동까지 하며 공부를 제대로 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곤 진로·적성 탐색은 고사하고 기초 학력조차 못 갖춘 아이들이 늘어난다. 더 심화된 공교육 부실로 발생하는 학력 저하를 가진 자들은 사교육으로 보충할 수 있으니, 빈부에 따른 학력 차이는 더 심각해진다.

학생이 원하는 동아리 활동, 특별활동도 개설하기 어려워, 하기 싫은 활동을 억지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선택학점 수업은 과목이나 교사에 따라 선호도 차이가 커 상위권 학생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는 불공정이 생길 수 있다. 지금도 일반고에서 학교 진학성적을 위해 상위권 학생 몰아주기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학의 인프라를 활용하겠다는 대책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지방대학은 대부분 정부의 재정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부실대학이 허다한데, 이런 대학이 고교생을 위해 제대로 된 수업을 진행할 리 만무하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대학에 예산을 지원해야 해 국고 낭비다. 안 써도 될 돈을 불필요한 제도를 만들어 낭비하는 꼴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고교 수업체계가 학점제로 바뀌는데 현재 대학입시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교육체계를 바꾸려면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대학입시와 연계해 바꿔야 혼란이 없다. 중학교에서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경우 오락가락하는 교육체계에 실험실 생쥐가 됐다면 불만이다. 고교학점제는 다양한 제반 요소부터 어떻게 해결할 건지 대책부터 마련한 후 시행해도 늦지 않다. 2년을 앞당기며 속전속결로 밀어붙일 정도로 장점이 보이지 않는 교육정책이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맞는지부터 제대로 검증 후 도입해도 늦지 않다. 미국에서 성공했다고 도입한 학생부종합전형, 입학사정관제, 수시 제도, 로스쿨 등 문제 많고 탈도 많은 입시제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 차이를 간과한 잘못이고 기득권층의 필요에 의해 도입한 탓이다. 교육정책을 만들려면 학생과 학교부터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된 현장의 소리를 듣지 않고 교육부에서 만들어 학교에 통보만 하는 교육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