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너다’

박영근 시인은 자정이 넘으면 얼큰히 취한 모습으로 어김없이 내 작업실을 찾아와 소주 한잔을 달라고 하였다. 소주가 몇 잔 들어가면 조영남의 시디를 틀어 달라고 하며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침중한 얼굴로 손을 휘저으며 조영남의 노래를 불렀다. 많은 노래들 중에 언제나 단 한 곡만을 틀어 달라고 하였다.

한 가지 노래만 들으면 질릴 만도 한데 다른 노래는 주문한 적도 없다. 인천 관교동의 지하 작업실은 원래 소극장이었던 곳으로 천정에는 먼지가 희뿌옇게 덮인 연극용 조명들이 달려 있었고 오래된 다락방과 조그만 무대를 가지고 있었던 곳이다.

화실 주변 벽에는 그리고 있던 민화 풍 그림이 그려진 한지들이 벽에 한가득 붙어 있었다. 그러한 그림들을 인테리어 삼아 운영하던, 지인들 전용 술집 겸 화실이라는 표현이 맞다. 월세를 내기 위하여 소주와 안주도 팔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반년을 못가고 문을 닫고 말았지만 말이다.

술 냄새와 함께 듬뿍 갈아 놓은 먹 냄새가 얼크러져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안주를 만드느라고 부엌에서 분주히 오가다가 나와 보면 그림을 그리려고 화판에 붙여 놓은 한지에 ‘나는 너를 사랑 한다’나는 나의 너다’라는 시구를 화면 가득히 쓰고 있었다. 종이를 뜯어버리고 다시 새 종이를 붙이려다가 가만히 보니 글씨 안에 어떠한 형상이 보인다. 글씨를 이용하여 문자도를 그렸다. 반투명한 한지의 속성을 이용하여 본인이 최초로 개발하였던 기법인 한지 북채(北彩)기법을 사용하여 먹 글씨가 쓰인 뒷면에 색을 칠하였다. 고려불화에서 얇고 투명한 비단에 뒷면에 색을 칠하던 기법인데 한지에 적용한 사람은 없었다.

내 호가 북주(北洲)인데 기법도 북채이니 제법 궁합이 잘 맞는 듯하다.

덕분에 맘에 드는 작품을 두세 개 만들었다. 몇 년 후에 박 선배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 때 그렸던 그림들과 조영남의 노래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 새벽에 문을 닫을 즈음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내려와서 술 냄새를 풍기며 택시비를 달라고 하곤 하였는데 가끔 새벽에 문밖을 나서면 어디선가 형을 태운 택시가 올 것 같다. 조선의 프로화가들 그림들 중에 높은 산위에 구름을 그린 액자를 걸어 놓아 현대 대지미술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있듯이 내가 그린 꽃들에 쌓인 여인의 모습 속에 영근 형의 글씨들을 걸어 놓게 그렸다. ‘나는 나의 너다….’

‘하나는 곧 여럿이고 여럿은 하나이다(一則多 多則一)’의 불가사상이 말하여 주듯이 ‘꽃과 여인과 내가 하나 되는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박 선배의 노랫말이 생각나면서 문득 바람까지도 거두어 품을 수 있는 긴팔을 가진 사람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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