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줍다

김순일(1939 ~  )

별이 서늘한 가을날
우산재 앞 공원에서
낙엽을 줍는다.

벌레 먹고
병들고
거무칙칙하고

세월에 할퀴고 찢긴
은행잎을 줍는다.

상처 많은 나
나를 줍는다.
 

[시평]

살아가면서 어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흔히 우리네 삶을 뒤돌아보면, 마치 벌레 먹고, 병들고, 그래서 거무칙칙해져서 떨어져 나뒹구는 나뭇잎을 보는 듯하다. 나이가 드는 것도, 늙어가는 것도 실은 서러운 일인데, 이 나이가 되도록 이룬 것 변변히 없다는, 자신에의 뜬금없는 자각이, 문득 자신이 벌레 먹고, 병들고, 그래서 거무칙칙해진 나뭇잎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어디 한 생애를 살아간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해야만 하는 건가. 한 생애를 대과(大過) 없이 살아낸 것만 해도 실은 이룰 것은 다 이룬, 대견한 일 아니겠는가. 어쩌면 이 세월이라는 것이 나 자신을 할퀴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감싸주며, 보듬어주며 지나간 것 아니겠는가.

살아가면서 어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마는. 비록 나를 할퀸, 그러므로 아픈 상처를 우리들 마음과 온몸에 만들어 놓았을지라도, 이는 어쩌면 상처만이 아니리라. 오늘의 나를 이렇듯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힘인지도 모른다.

별이 서늘한 가을날 우산재 앞 공원을 지나다, 문득 세월에 할퀴고 찢긴, 그래서 상처 많은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견뎌온 저 세월의 긴 시간을, 그 속에서 발견한다. 세월에 씻기고 씻겨, 비록 이제 거무칙칙해졌지만, 그래서 더욱 더 소중한 나, 그 속에서 줍는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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