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질 때면

양순복

고향집 지붕 위로
낮게 내려앉은 달빛에
박꽃도 새하얗게 웃던 날

처마 끝에 등불 밝혀 놓고
마루 끝에 앉아
자식들 기다리시던 어머니

어서 가거라.
해 저물기 전
어서 가 식구들 잘 건사하라

서쪽 하늘 노을 속에서
그날의 쓸쓸한 어머니가
자꾸만 손짓하신다.
 

[시평]

엊그제 추석이 지났다. 코로나로 인해 추석에 고향을 찾는 행렬이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많은 차량들이 고향 가는 고속도로 위로 나섰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하지만, 연로한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더욱 그리운 곳이 된다. 그래서 그런가. 아무리 고향이라고 해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시면, 고향을 찾는 발걸음이 뜸해짐이 사실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명절이 되면 처마 끝에 등불 하나 덩그마니 밝혀 놓고, 마루 끝에 앉아서 집으로 올 자식들을 기다리신다. 하마 지금쯤은 동구 밖에 왔겠지. 우물가를 지나고 있겠지 하시며, 부모님은 자식들을 손꼽아 기다리신다.

아들, 며느리, 그리고 뛰어노는 손주들로 며칠간 복덕거리다가, 추석 연휴가 끝나갈 때면, 부모님들께서는 일 년 내내 땀 흘려 지은 농산물들을 싸서 자식들에게 들려 보내신다. 자식들은 하나둘 각기 자신들의 집을 향해 떠난다. 그러면 섭섭한 마음, 안으로 삼키시며 부모님들께서는 “어서 가거라. 해 저물기 전. 어서 가 식구들 잘 건사하라” 하시며 손을 젓는다.

오늘도 서쪽 하늘가에 노을이 질 때면, 그날의 쓸쓸한 어머니가 자꾸만 손짓하신다. “어서 가거라. 해 저물기 전에, 식구들 잘 건사해라.” 어머니 말씀 귀에 쟁쟁 들려오는 듯하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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