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이 제76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21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이 제76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코로나19 확진자 한 명도 없다는 투르크메니스탄

외부기구·언론인·활동가 “코로나19로 수천명 사망”

[천지일보=이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지 거의 2년 동안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확진자가 단 한명도 나오지 않은 가운데 국가가 이를 숨기고 있으며 실제 코로나19 사망자는 수천명에 달할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존스홉킨스대학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금껏 단 한명의 확진자도 보고하지 않은 국가 및 지역은 5곳이다. 거의 6백만명의 인구가 있는 투르크메니스탄과 북한, 세 곳은 태평양에 있는 고립된 섬들이다.

2006년부터 이 나라를 통치해온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이 ‘코로나 제로’를 주장하지만 이는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고 25일 CNN방송은 투르크메니스탄 외곽의 독립단체와 언론인, 활동가들을 인용해 전했다.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연설에서 자국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유엔의 의심에 대해 “가짜”라며 “전염병에 대한 대응을 정치화해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독립단체들과 언론인, 활동가들은 투르크메니스탄의 병원이 코로나19 환자들로 압도되고 수십명이 숨지며 3차 유행과 싸우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대통령이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바이러스의 위협을 경시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 출신의 망명자이자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독립뉴스 ‘투르크멘 뉴스’의 루슬란 투르크멘은 개인적으로 교사, 예술가, 의사 등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60명 이상의 사람들의 이름을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투르크멘은 건강 기록과 엑스레이 등 사망자들의 모든 의료·사망기록을 확인했으며 이들이 모두 심각한 폐 손상 등 코로나19 희생자들과 일치된 의학적 증상을 보였다는 자료도 있다고 밝혔다.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입장 표명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투르크메니스탄은 550만명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보고한 이란과 긴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 외무부 웹사이트에 따르면 투르크메니스탄으로의 모든 비행은 현재 중단됐고 자국민만 나라에 입국할 수 있다. 투르크멘은 투르크메니스탄에 있는 그의 소식통들이 작년 5월경부터 확진자 발생에 대한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나라에 코로나19가 퍼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가 받은 첫 번째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상한 폐 질환, 독감 같은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시 투르크메니스탄은 독감 계절도 아닌 섭씨 40도에 달하는 더운 날씨에 있었다.

2020년 6월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애쉬가바트 주재 미국 대사관은 코로나19와 일치하는 증상을 가진 현지 시민의 보고를 경고하고 최대 14일간의 격리를 조치했다.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즉각 이 성명을 “가짜뉴스”라고 불렀다.

다음 달인 7월 투르크메니스탄에 파견된 WHO 대표부는 이 나라에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급성 호흡기 감염과 폐렴 환자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투르크멘에 따르면 그때까지 상황은 통제할 수 없었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특정한 종류의 매운 국물을 먹는 것과 같은 이상한 공중보건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올해 1월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 세계은행은 코로나19 위협을 예방하고 탐지하고 대응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보건시설과 건설 비용을 위해 2천만 달러를 빌려주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유럽에 본부를 둔 망명자 단체인 투르크메니스탄 시민의 권리와 자유의 이사인 다이애나 세레브랴니크는 현지 병원들이 최근 밀려오는 환자들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해외에 살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의사들이 자국에 있는 옛 동료들과 접촉하고 있어 실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레브랴니크에 따르면 현지 의사들은 산소와 인공호흡기를 구하기가 힘들고 치료비가 비싸며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수천명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코로나바이러스로 불타고 있다”며 “때때로 병원에서는 환자들을 받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서 또한 코로나19 사망자들의 진단서에 때로는 심장마비와 같은 다른 질병을 원인으로 기록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환자가 ‘0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날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기념일을 즐기는 모습을 국영TV을 통해 내보냈다. (출처: 트위터)
코로나19 환자가 ‘0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날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기념일을 즐기는 모습을 국영TV을 통해 내보냈다. (출처: 트위터)

비영리 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에 따르면, 보건 요원들이 현장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려고 할 때 침묵하도록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언론의 자유와 독립적인 조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투르크메니스탄은 2021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북한과 에리트레아 바로 위인 178위(180개국 중)를 차지한 바 있다.

이 단체는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이 고문과 가혹한 처벌을 당하거나 실종됐다는 보고가 잇따른다고 전했다.

이런 정보들이 사실이라면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은 왜 코로나19 발병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일까. 투르크멘과 세레브랴니크는 모두 치과 의사이자 전직 보건부 장관으로서 국민의 복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는데 큰 중점을 둔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차단하면서 이 나라에 구세주와 같은 지도자로 보이길 원했다고 지적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창조한 이상화된 이미지를 훼손하고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잠재적으로 책임을 물어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이 입장을 번복하고 자국 내 코로나19 사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준비가 돼 있다는 징후는 아직 없지만 세레브랴니크는 정부가 결국 이를 시인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휴먼 라이츠 워치의 덴버는 WHO를 포함한 투르크메니스탄과 교류하는 국제기구들은 투르크메니스탄 내부의 상황에 대해 세계에 정직하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덴버는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돼 있다”며 “우리 중 하나가 실패하면, 우리 모두가 실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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