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청와대 청원글이 올라와 있다.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부친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청와대 청원글이 올라와 있다.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직장 내 괴롭힘’ 극단 선택

유족 “진심어린 사과해라”

팀장 “청원글과 사실 달라”

KT, 노동청에 조사 의뢰

[천지일보=손지아 기자] KT 동부산지부에서 일하던 50대 남성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고인과 고인이 유서에서 지목한 팀장의 상반된 주장을 펼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KT는 고용노동청에 관련 조사를 의뢰했다.

◆靑에 직장 내 괴롭힘 호소 청원글 올라와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큰딸 결혼식 2주 뒤 자살을 선택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극단적 선택을 한 50대 직장인의 아들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아버지는 30여년 넘게 국내 3대 통신사 중 한 곳에서 몸담아왔다”며 “직장 내 괴롭힘과 압박을 견디다 못해 2021년 9월15일 새벽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다”고 했다.

청원인은 “큰딸을 시집보낸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다는 게 정말 의문이었다”며 “그러던 중 집에서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 내용도, 평소 아버지가 불만을 토로하실 때도 특정 인물만 지목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6월쯤 나이 어린 팀장이 새로 부임했는데 (팀장은) 아버지에게 인격 모독성 발언을 하고 아주 오래전 일을 들춰 직원들에게 뒷담화를 해 주변 직원들까지 아버지를 냉대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부친 유서에는 “회사에 젊은 팀장이 한 명 왔는데 나를 너무 못살게 군다” “출근하는 게 너무 지옥 같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이야기해 소위 이야기하는 왕따 분위기를 만든다” “사람이 싫다, 무섭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청원인은 부친이 사망한 날 아침 팀장으로부터 “아버지가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아 집 앞까지 쫓아왔다” “아버지 어디 있느냐” “왜 전화를 꺼놨냐”며 화를 내는 전화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팀장에게) 아버지 가시는 길에 미안하다는 진심어린 사과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팀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사과 한마디가 없었다”고 했다.

유족들은 지난 17일로 예정됐던 고인의 발인을 연기했다. 청원인은 “지사장이라는 사람은 ‘혹시 원하는 게 있느냐’는 식으로 사과 한마디 없이 책임을 회피하고 사건을 빨리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저희가 원하는 건 54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라고 하소연했다.

KT 로고. (제공: KT) ⓒ천지일보 2021.1.22
KT 로고. (제공: KT) ⓒ천지일보 2021.1.22

◆고인의 팀장 “진실 밝혀질 것” 억울함 토로

고인의 유서 속 괴롭힘 당사자로 지목된 팀장이 “노동청에 정식으로 의뢰됐다”며 “진실은 어떤 식으로든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KT 동부산지부 팀장 정모씨는 23일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국민청원에 올라온 딸 결혼 2주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의 팀장”이라며 “고인이 우리 팀원이라 저도 무척 힘들지만 유족들의 아픔만큼은 아닐 거라 생각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에도 침묵하고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대해 정씨는 “저는 고인보다 나이가 많으며 여성직책자다. 직장생활 32년 차로 팀장을 10년째 맡고 있다”며 “국민청원에 올라온 나이 어린 젊은 팀장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7월 1일 자 발령으로 고인과 근무하게 됐으며 고인과 함께 근무한 날이 휴일, 휴가 제외하고 34일이었다. 우리 팀은 팀원이 저를 포함 5명이고 코로나로 팀 전체 회식은 34일 동안 점심 1회가 전부였다”며 “고인을 제외하고 팀 회식을 한 적도 없다. 또한 욕설을 해본 적도 없고 그분이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같이 일하는 팀원의 뒷담화를 한 사실도 전혀 없다.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저도 정말 궁금하다”고 관련 의혹들을 부인했다.

이어 “(고인은) 항상 말이 없으시고, 간식을 같이 먹자고 해도 안 드셨고, 점심을 하자고 해도 선약이 있다고 했었다”며 “업무에 관한 부분을 질문하면 단답형으로 대답하셔서 업무 얘기도 원활하게 못 한 편이었다. 영업직이라 아침에 잠깐 얼굴을 뵙고는 거의 외근을 했고 퇴근 무렵 복귀해서 결산을 작성해서 통보하는 일상이셨다”고 했다.

정씨는 고인의 빈소에서 고인의 고충을 처음 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일방적 폭행을 당했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그는 “조문하러 가서 고인에게 절을 하고 유족에게 인사하려는 순간 배우자에게 욕설과 일방적 폭행을 당했고 직후에 유가족들이 모여서 저에게 사과하라고 윽박질렀다”고 했다. 이어 “왜 갑자기 맞아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며 “고인이 저 때문에 힘들었다는 얘기를 그날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어 “고인과 제대로 얘기라도 해봤다면 어떤 부분 때문에 힘들었는지 물어라도 보겠지만 예전 일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뒷담화를 했다’ ‘욕을 했다’는 일방적인 내용을 국민청원에 올리면 모두 기사화되는 거냐”며 “사실 확인까지는 어렵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 확인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토로했다.

또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당일, 고인이 출근을 하지 않자 팀장이 집으로 찾아와 전화로 화를 냈다는 청원인의 주장에 대해서는 “최근 코로나로 재택근무 등 팀원의 개별 근무 상황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고 전화를 했으나 가족들도 고인의 소재를 알지 못했다”며 “아드님과 당일 여러 차례 통화했으나 화를 낸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청원글에 공개된 유서 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못살게 군 내용이 없으며 그런 사실이 없다” “휴가, 리프레시 휴직, 병가 등 신청하셨으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근무할 수도 있었다” “나이도 제가 더 많고 업무 관련 사항도 제대로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등의 이유를 들어 반박했다.

정씨는 “저도 평범하게 그저 하루하루 일을 하는 직원”이라며 “고인에게 진심으로 명복을 빌지만 욕설, 뒷담화, 괴롭힘에 대해서는 노동청의 철저한 조사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괴롭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KT새노조 “노사 공동조사 시행 필수”

KT새노조는 22일 이번 사건과 관련된 성명서를 내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고 KT 내부에도 관련 절차가 마련됐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피해자가 괴롭힘을 호소해도 형식적인 조사를 하고 문제없음으로 끝내버리기 쉬운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KT에 공정하고 신속한 조사에 착수하고 필요한 경우 노사 공동조사를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또한 “유족의 증언 내용을 보면 고인이 전형적인 KT식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며 “팀장이 직원에게 폭언 등 인격모독을 일삼고 다른 직원들을 부추겨 따돌리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사례들이 KT에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KT 측은 23일 “자체 조사뿐만 아니라 객관적 조사를 위해 고용노동청에 조사를 의뢰했다”며 “사실관계 규명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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