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민들이 귀성길에 나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1.9.17
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민들이 귀성길에 나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1.9.17

감염 우려로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 백신 접종에 만남 결심

“제가 가는 게 선물이에요” 가족 만날 생각에 설레는 시민들

“시댁은 남편이, 친정은 나만 방문” 각자 챙기는 풍속도

여전한 코로나 확산 우려에 각자 집에서 제사지내는 이들도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아들·딸 모든 가족이 모이는 게 2년 만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이에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후로 2번째 맞는 추석이다. 대한민국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지만 지난해엔 대확산 우려에 정부는 이동을 최대한 자제를 권고했다. 실제 이동량도 적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올해 추석은 전 국민 백신 접종이 진행되는 상황에, 이른바 ‘위드 코로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지난해보단 다소 귀성 행렬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도 추석을 맞아 거리두기 4단계 지역이라도 백신 접종자가 포함될 경우 8인까지 가족 모임을 허용하기로 했다.

천지일보는 17일 귀성길에 오르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역과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을 방문했다.

호남행 버스가 오고가는 서울 센트럴시티 터미널은 평일 오후임에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더러는 피곤한 듯 대합실 의자에 기대어 눈을 붙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손에 떡함지를 들고 귀성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선물 꾸러미를 들기 보다는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민들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1.9.17
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민들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1.9.17

◆“백신 접종해서 오랜만에 가족 상봉”

기자가 만난 조수현(여, 광주)씨도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쥐고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건강기능식품을 파는 일을 하는 조씨는 광주에 살지만 서울에 일 때문에 방문한 상황이었다.

코로나 유행 이후 몇 차례 명절이 있었지만 조씨는 “그동안 코로나19 위험 때문에 가족들이 모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씨 가족들은 그간 철저하게 방역 수칙을 지켰다.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려도 그리움을 삼키며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이번 명절은 달랐다. 2년 만에 가족 상봉이 이뤄진다.

조씨네 가족이 드디어 가족 모임을 결심한 이유는 백신 접종을 마쳤기 때문이다.

조씨는 “남편도 백신을 접종했고, 온 가족이 백신을 다 맞았다. 그래서 (코로나19 발병 이후) 처음 만나기로 했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 “모인다고 어디 가지는 못하고 집 앞 잔디밭 공원이나 가려고 한다. 다른데는 위험하니까”라며 “애들이 다 같이 모이는 게 정말 힘들지 않나. 이렇게 만나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웃어보였다.

손주들 줄 장난감과 헤어밴드, 인형도 준비한 조씨는 가족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운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열차 정보를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1.9.17
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열차 정보를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1.9.17

서울에서 컨설팅 일을 하는 최희원(24, 여)씨 역시 캐리어와 함께였다. 최씨는 부모님이 계시는 충북 옥천으로 내려간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해 서울에서 홀로 지내던 최씨는 오랜만에 부모님을 볼 생각에 설레어 했다.

“집에 가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선물요? 따로 준비는 안했어요. 부모님께는 제가 선물이에요. 하하.”

코로나 위험 때문에 이동하는 게 겁나진 않은 지 묻는 질문엔 “서울이 더 위험하지 않나”며 반문했다. 실제 서울은 지난 15일 808명이라는 역대 최다 확진자를 기록한 상황이다.

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1.9.17
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 ⓒ천지일보 2021.9.17

◆제사도 각자-시댁·친정 챙기기도 각자… 이색 풍경도

이렇게 귀성에 나서는 이들도 있는 반면 이번 추석도 모이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서울 쌍문동에 사는 최병한(84, 남)씨는 9남매의 장남이다. 최씨 남매는 이번 추석에 모이지 않기로 했다. 장남인 최씨가 대신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최씨는 “(남매 중) 한명 정도만 서울에 올라오려나 한다”며 “그래도 맏아들이 제사 지내야 하지 않겠냐”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전엔 사촌 6촌 다 모여서 제사를 지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지 않나”고 담담히 말했다.

회사원 김문정(30, 여, 평택)씨는 시댁과 친정을 부부가 각각 방문하기로 했다. 남편은 시댁에, 김씨는 친정에 가는 것이다.

김씨는 “시댁에서도 오지 말라고 했다”며 “남편만 혼자 시댁에 다녀올 계획이다. 각자 따로따로 고향에 다녀올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들이 매진된 모습. ⓒ천지일보 2021.9.17
추석 연휴를 앞둔 17일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들이 매진된 모습. ⓒ천지일보 2021.9.17

서울 집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보낼 예정인 이도 있었다. 회사원 이정은(33, 여, 서울 양천구)씨는 코로나 걱정에 친척들 모임 대신 가족끼리만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이씨의 무료할 추석을 달래줄 취미는 바로 ‘넷플릭스’다. 이씨는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가기도 그렇고, 그냥 집에서 이것저것 보며 취미생활 하면서 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인과 함께였던 곽윤기(가명, 30, 남, 서울 광진구)씨도 “서울에 있는 친척끼리만 보기로 하고 지방엔 내려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시 코로나 위험 때문이었다. 코로나를 경계하는 곽씨와 연인 정은수(가명, 27, 여)씨는 추석 때 여행도 가지 않기로 했다.

한편 한국교통연구원은 이번 추석 연휴기간 동안 3226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작년 추석보다 3.5% 늘어난 수치다. 다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추석보다는 16.4% 적다.

이번 응답자 중 93.6%가 승용차로 이동하겠다고 밝혔다. 버스나 철도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은 각각 3.2%, 2.0%였다. 설문조사는 1만 3950세대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또 서울연구원은 이날 ‘서울시 소비자 체감경기와 경기 진단’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서울시민의 65.1%가 “올해 추석연휴 기간 이동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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