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강영은(1957 ~  )

바위나 벽을 만나면
아무도 모르게 금이 간 상처에
손 넣고 싶다.
단단한 벽에 기대어
허물어진 생의 틈바구니에
질긴 뿌리 내리고 싶다.
지상의 무릎 위에 기생하는
모으든 슬픔이여!
벼랑 끝까지 기어오르는
기막힌 한 줄의 문장으로
나는 나를 넘고 싶다
 

[시평]

담장이는 바위나 벽을 기어오르며 자신을 온몸으로 세상에 푸르게 펼쳐나가는 식물이다. 그런가 하면, 담장이는 틈만 있으면, 그 틈이 아무리 작아도 이내 집어넣을 수 있는 앙증맞은 손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아무리 깎아지른 절벽이라고 해도 기어 올라가며 자신의 푸르른 모습을 펼쳐가지 않는가.

그래서 시인은 이런 담장이를 바라보며, 바위나 벽의 아무도 모르게 금이 간 틈에 뿌리를 내리며 퍼져가는 담장이를 바라보며, 자신도 담장이 마냥 단단한 벽에 기대어 허물어진 생의 틈바구니에 질긴 목숨의 뿌리 내리고 싶다고 되뇐다. 그리하여 다시 그 푸르름의 생 펼쳐나가고 싶다고 되뇐다. 그리하여 아무리 큰 바위나 아무리 높은 벽이라도 이내 자신의 푸르른 문장으로 뒤덮고 싶다고 되뇐다.

자신의 언어로 짠 푸르른 문장으로, 자신의 이 신선한 정신으로 직조한 문장으로, 가슴 깊이 숨은 자신의 푸른 마음으로 다듬은 문장으로, 이 세상의 바위며 벽에 질긴 목숨의 뿌리를 내리고, 벼랑 끝까지 기어오르는 기막힌 한 줄의 문장으로, 자신을 넘고 싶다고 되뇐다. 그리하여 세상을 뒤덮을 크나큰 푸름의 꿈을 지닌 시인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되뇐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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