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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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눈여겨볼 만한 여론조사 결과가 있어서 그 내용 하나만 짚어보자.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의뢰로 지난 15일 발표한 내년 대통령 선거의 성격 및 대선후보 선호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55.3%가 “현 정권 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도 오차범위(±3.1%포인트) 안이긴 하지만 국민의힘이 6.1%포인트 더 높았다. 그렇다면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응당 야당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해야 논리상 맞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는 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가 29.3%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를 차지한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보다 무려 6.6%p가 높은 오차범위 밖 선두였다. 국민의 과반이 정권교체를 원하고 있는데도 정작 대선후보로는 이재명 지사를 오차범위 밖 1위로 선택한 것이다. 정권교체와 이재명 1위, 언뜻 보기엔 ‘논리 모순’이다. 하지만 이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범위를 좀 더 넓혀야 한다. 그래야 그게 모순이 하니라 현 시점에서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을 반영하는 ‘합리적 선택’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는 원하지만 대선 후보로는 이재명을 택하는 여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큰 흐름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다. 지난주 9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41%로 나타났다. 전주보다 3%포인트 반등한 것이다. 물론 부정평가가 52%로 더 높지만 임기 5년 차를 감안한다면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꽤 높은 편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즉, 다수가 정권교체를 원하고는 있지만 임기 5년 차를 감안한다면 그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민주당 후보가 본선 경쟁력이 있다면 정권교체 여론을 얼마든지 잠재울 수 있는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정권교체 여론이 더 높다는 이유로 국민의힘 후보들이 마냥 반길 일도 아닌 셈이다.

둘째는 ‘정권교체와 정권유지’가 갖는 ‘프레임의 한계’다. 역대 어느 정부를 보더라도 임기 5년 차에 ‘정권유지’를 바라는 여론이 더 높았던 적은 없었다. 대체로 임기 말이면 이미 ‘레임덕’에 빠져서 국정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임기 5년 차에 정권유지와 정권교체 가운데 하나를 묻는 것 자체부터가 결정적인 한계다. 정권교체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특히 부동산 정책 붕괴는 ‘문재인 정부의 재앙’처럼 각인돼 있다. 국민적 분노는 이미 들불처럼 확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권유지를 바라는 국민이 37.6%나 나왔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5년 차에 정권교체 여론이 더 높다는 것보다 오히려 정권유지 여론이 무려 37.6%나 나왔다는 데 방점을 찍는 것이 더 유의미한 설명이다. 그래야 정권교체와 이재명, 그 논리적 모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으로 다가가 보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정치현실의 가장 큰 특징은 ‘진영 간 대결’이 과거 어느 때보다 격화됐다는 점이다. 정치현실은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내편과 네편’으로 갈라졌다. 정치가 그 모양이니 우리 사회 대부분의 관계도 그런 식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대화와 협상, 협치는 이미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저 쪽이 죽어야 이 쪽이 사는 정치라면 그건 ‘전쟁’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우리 정치현실이다. 그 사이 최소한 합리적 유권자들은 절망했다. 아니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이런 정치현실에서 과연 정권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냉소였다. 기호 1번과 기호 2번으로 나뉘어서 대선 때마다 싸우면서 서로 주고받는 정권교체, 이젠 그런 시대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민심이 그 해 겨울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촛불로 일궈낸 문재인 정부마저 이 모양이라면, 이젠 정권교체를 뛰어넘는 정치권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박하다는 여론이 그것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 지금은 그 ‘통로’가 없다. 가장 유효했던 ‘제3지대 정치세력’은 이미 종언을 고한 상태다. 진보정당은 여전히 작아 보이고, 다른 대안도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서 이 시대와 조응하는 ‘정치교체’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내년 대선에서 정권유지에 손을 들어 줄까. 적어도 그건 아닐 것이다. 정권유지는 정치교체의 모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수가 어떤 방식이든 지금 이대로의 권력이 지속되는 것에는 상당한 거부감이 있을 것이다. 굳이 양쪽으로 나눈다면 정권유지보다 정권교체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그것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정권교체 여론이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지사가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정권교체를 뛰어 넘어 정치교체를 바라는 사람들은 형식으로는 정권교체를, 내용으로는 이재명 지사를 선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정치교체를 실현코자 하는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이재명은 정권교체냐 아니면 정권유지냐 하는 낡은 프레임을 뛰어넘어서 미래의 정치교체 적임자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재명 지사의 정치역정과 정책이 그들이 바라는 정치교체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제 답은 간명하다. 지금의 정권교체 여론에는 그보다 더 강력한 정치교체의 민심이 담겨 있으며, 그들의 시선이 이재명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교체, 그 강력한 개혁의 아이콘에 이재명 지사가 앞으로 어떻게 화답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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