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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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이혼하며 돌보지 않고 버린 10대 형제를 9년 동안 보살펴준 할머니가 형제에게 칼로 수십 차례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준다. 할머니는 손자가 휘두른 흉기에 머리와 얼굴, 팔, 등 전신을 30여 차례나 찔렸다. 할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동기가 겨우 ‘할머니가 잔소리를 많이 하고 심부름을 시켜 짜증났다’는 단순한 이유였다니 기가 막힌다. 부모도 버린 자신들을 친자식이라 생각하고 돌봐준 할머니를 칼로 난자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인간이길 포기한 행동이다.

형제는 부모의 이혼으로 지난 2012년부터 신체장애가 있는 조부모 집에 맡겨져 생활해왔다. 평소에도 할머니에게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니 우발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패륜범죄를 저지른 이상 영원히 이 사회와 격리돼 반성하며 살도록 법의 엄정한 심판이 있어야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부족한 게 많아 욕구불만이 많았다 한들, 형제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용서가 안 된다. 노구에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데도 뒷바라지를 해줬다면 더욱 감사하며 열심히 살았어야 한다.

부모가 젊더라도 사춘기 형제를 돌보는 건 쉽지 않다. 힘없는 할머니와 휠체어 신세를 지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힘에 부쳤을지?’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프다. 부모가 낳고 포기한 아이들을 조부모가 키우다가 이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건 국가의 정책이나 사회의 돌봄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탓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힘에 부쳤을 조부모의 짐을 사회가 나눠서 졌다면 흉악한 범죄는 막을 수 있었다. 출산율 올리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지원책도 절실하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했던 삶에서 형제가 사춘기를 겪으며 삐뚤어졌을 확률이 높다. 형제의 마음속에는 자신들을 버린 부모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이 항상 내재 돼 있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심도 가득했다고 본다. 예전처럼 누구나 어렵게 살던 세상에서는 어려운 환경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대부분 풍족하게 사는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어렵게 살면 상실감이 커 사회에 대해 복수심이 생길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자식을 낳은 후 부모의 역할을 포기하고 형제를 조부모 집에 버린 부모에게 있다. 아이를 낳기만 하고 양육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모의 무책임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번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부모로서 자격이나 준비 없이 아이를 낳아 결국 흉악범을 만들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조손가정,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아이들에 대한 돌봄 대책을 정비해야 한다. 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돌봄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랄 때 사회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주로 하는 게임이 총과 칼로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폭력적 게임이 많은 것도 원인이다. 게임 속에서 인간을 사냥하듯이 살육을 하고 피가 여기저기로 튀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 폭력적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게임 속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도 생긴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고 사리분별력마저 떨어지는 경향도 있다. 게임에서 지거나 게임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지나친 흥분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형제도 공부보다는 폭력적인 게임 속 잔혹함에 익숙해졌을 수 있다. 폭력적 게임에 대한 대책도 분명히 마련돼야 한다.

필자의 또래들은 대부분 생활이 어려웠다.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도 별로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개척했다. 조부모 밑에서 크는 아이도 많았지만, 조부모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벌며 학교에 다녔다. 제대로 된 인성을 가졌다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부모나 조부모에게 패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 어떤 교육보다 중요한 게 인성교육이란 걸 이번 사건은 보여줬다.

부모가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야 아이들이 올바른 정서와 인성이 형성된다. 자식을 낳았다면 끝까지 책임지고 양육해야 한다. 자식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린 부모를 대신해 손자들을 맡아 키운 할머니의 고단했을 삶이 느껴져 안타깝기만 하다. 부디 하늘에서라도 마음의 짐을 벗고 편안한 삶을 살기를,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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