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출처: 여의도순복음교회 홈페이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출처: 여의도순복음교회 홈페이지)

14일 오전 7시 13분 별세 향년 86세

지난해 뇌출혈로 긴급 수술 받고

서울대병원서 치료, 회복 이어와

 

70년대 신유집회로 교회 대부흥

종말론 휴거론 등 논란 불러와

교계로부터 ‘이단’ 규정 받기도

각종 의혹 등으로 명예 급실추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교회로 기록된 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조용기 목사가 14일 오전 7시 13분께 8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조 목사는 지난해 7월 교회 집무실 출입문에 머리를 부딪힌 이후 경미한 뇌출혈 증세를 보여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 목사는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부인 故 김성혜 한세대 총장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방언·신유집회로 ‘80만 신도’ 부흥 신화

조 목사는 1958년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천막을 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 지금의 교인수 80만여명에 이르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키워낸 한국교회 거물 목회자로 꼽힌다. 다른 개신교 교회와는 달리 방언(方言)과 신유(神癒: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 등으로 신자들을 끌어 모았고 1973년 여의도에 교회를 짓고 본격적인 부흥이 이뤄졌다.

1970년대 경제 성장과 맞물려 아픔과 고통 속에 있던 서민들은 조 목사의 신유 집회에 이끌렸다. 교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1984년 40만명, 1992년엔 70만명을 넘어서며 1993년에는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교회로 기록되기도 했다.

교회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봉사활동에도 나섰다. 1980년대부터 국내와 동남아 등 심장병 어린이의 수술을 도운 것이 5000명에 이른다. IMF구제금융 사태로 실업자와 노숙자가 속출하던 1990년대말에는 금 모으기 운동에도 앞장섰다. 1999년엔 국내외 구제 활동을 위한 NGO 굿피플을 창립했고, 2007년에는 평양에 심장전문병원을 착공했다. 그는 생전에 “병원 이름에서 내 이름은 빼도 된다”며 병원 설립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남북관계 악화와 대북 제재 등의 여파로 병원은 아직 완공되지 못했다.

조용기 목사(위)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으로 있을 당시 1998년 5월 17일을 말세의 마지막 날로 규정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설교한 적 있다. 1992년 휴거를 한다고 주장해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은 다미선교회. (출처: 한기총-신천지 교리비교 ‘휴거’편 유튜브 캡처)
조용기 목사(위)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으로 있을 당시 1998년 5월 17일을 말세의 마지막 날로 규정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설교한 적 있다. 1992년 휴거를 한다고 주장해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은 다미선교회. (출처: 한기총-신천지 교리비교 ‘휴거’편 유튜브 캡처)

◆ “우리 교회는 하늘로” 휴거·종말론 주장도

조 목사가 주장한 휴거론 등은 우리나라에서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으로 있을 당시 설교에서 1998년 5월 17일을 말세의 마지막 날로 규정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실제 1984년 조 목사의 설교 영상에 따르면 그는 “주님은 한 세대 후에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세대는 1998년도면 한 세대가 되는 것이니 한 2000년쯤이면 한 세대가 다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이 84년도이므로 역시 16년 이후가 되면 이 세상 6000년 역사가 끝날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예언했다.

조 목사의 이런 주장은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서 끝나버리게 됐다. 이 외에도 일본 지진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라고 해석하거나 특정 날짜를 정해 자신이 천당에 간다고 주장해 교계 안팎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급성장에 ‘이단’ 낙인

창립과 함께 엄청난 부흥을 이뤘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때 개신교 주류 교단으로부터 경계 대상으로 낙인찍혀 ‘사이비’ 규정을 받은 적도 있었다. 교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인 1983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제68회 총회에서 ‘조용기, 권신찬 이단 사이비 연구대책위원회’의 보고서를 채택하고, 조 목사를 ‘사이비’로 규정했다.

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사이비이단문제상담소(소장 최삼경 목사)가 1993년 4월 27일 발간한 ‘상담소자료집 3-사이비이단에 대한 대책과지침I’에 자세히 명시돼 있다.

지난 18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기념예배 및 행사를 진행한 가운데 조용기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그는 여의도순복음교회 60년 역사를 ‘성령의 역사’라고 자평했다. ⓒ천지일보 2018.5.20
지난 2018년 5월 18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기념예배 및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조용기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그는 여의도순복음교회 60년 역사를 ‘성령의 역사’라고 자평했다. ⓒ천지일보DB

이 지침서는 당시 예장 통합 전국 교회와 교역자들에게 통보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조용기 목사를 사이비로 규정한 근거로 제시한 것 중 하나는 “기성교회 교인 뺏기와 같은 일로써 많은 교회와 교역자들에게 피해를 줌으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조상숭배, 부활처녀 소동, 치병안수사건, 목사안수 남발, 무분별한 성찬예식, 성령의 증거, 신앙운동, 삼박자 구원 등을 문제 삼았다.

조 목사에 대한 이단‧사이비 논란은 예장 통합 제77회기인 1992년까지 10년 동안 지속됐다. 그 사이인 1988년 국민일보가 창간됐고 이듬해 조 목사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한국기독총연합(한기총)이 탄생했다. 조 목사가 한기총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 중심축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1993년 예장 통합 측은 연합사역 영역에서 조 목사에 대한 사이비 시비를 해제했다. 이후 주요 교단에서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한 이단‧사이비 시비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 가족범죄, 정치행보 등으로 명예 ‘추락’

조 목사는 2008년 5월 당회장 직에서 물러나 이후 원로목사로 본격 활동했다. 당시 많은 교회들이 세습 문제로 지탄을 받을 때 조 목사는 진짜 아들 대신 영적 아들로 생각했던 이영훈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기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러나 그가 사실상 뒤에서 교회의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의혹이 터지면서 교회 사유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후 가족의 범죄 등 끊임없는 구설수에 오르며 신망이 땅에 떨어졌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130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목사와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앞서 조 전 회장은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고 이미 법정 구속된 상태였다.

국민일보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조용기 목사(왼쪽)와 아들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 (출처: 뉴스타파)
국민일보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조용기 목사(왼쪽)와 아들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 (출처: 뉴스타파)

2017년 3월에는 조 목사의 차남 조민제 국민일보 회장도 신문 편집제작시스템 용역 대금을 부풀려 2억원의 신문발전기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교인들에게 아버지로 추앙받던 그의 명예는 여러 논란과 구설수로 추락했다. 이는 곧 교인 수 감소로 나타났다. 1993년 기네스북 등록 이후 2018년 교인 수는 14만 5000명이 감소한 55만 5000명으로 집계됐다.

서울 종로구 신교동 푸르메센터 앞에서 '조용기 목사 수백억 횡령 항고사건'과 관련해 재기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로기도모임 하상옥 장로가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DB
서울 종로구 신교동 푸르메센터 앞에서 '조용기 목사 수백억 횡령 항고사건'과 관련해 재기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로기도모임 하상옥 장로가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DB

◆ 정치 행보도 논란… 전광훈 목사의 뿌리

목회자의 신분으로 노골적인 정치적 행보도 논란을 불러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 논란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기독교인은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날마다 그 나라의 수반인 대통령과 영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1년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등과 함께 우파 성향의 기독교정당 결성을 추진했다. 한기총 전 대표회장이자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자신이 조용기 목사와 김준곤 목사의 요청으로 12년전 기독당 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목사의 빈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마련될 예정이다. 설교는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맡았다. 장례예배는 오는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진행되며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공동대표회장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가 맡는다.

하관예배는 18일 오전 10시 장지인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에서 진행된다.

유족은 조희준, 민제(국민일보 회장), 승제(한세대 이사) 등 3남이 있다. 조 목사의 아내 김성혜(79) 한세대 총장은 지난 2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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