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3일 중국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3일 중국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이후 10개월만

美연대 강화 겨냥한 맞대응 관측

한미일 북핵대표 이은 연쇄 만남

‘디지털화폐’ 구축 목적이란 의견도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오는 14일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는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만나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갖는다.

왕이 부장의 방한은 지난해 11월 이후 열 달만이고, 한중 외교장관회담은 지난 4월 정 장관의 중국 푸젠성 샤먼 방문 이후 5개월만이다.

외교부는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양국 관계의 심화와 발전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미중 갈등 심화 속 왕이 부장의 방한의 의미와 속내가 뭔지 관심이 쏠린다.

◆왕이, 4개국 순방… 15일 한중 외교장관회담

중국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10일 베트남을 방문한 뒤 캄보디아, 싱가포르를 거쳐 마지막 순방지로 한국에 온다. 지난 7월 중순 시리아와 이집트, 알제리를 방문한 지 약 두 달만의 해외 순방이다.

짧은 방한 기간 왕이 부장은 정 장관과 양자회담(15일)을 갖고, 한중 양자관계와 한반도 문제, 지역 정세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는 일정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왕이 부장의 4개국 순방 행보를 두고 동남아 국가에 ‘협력’의 뜻을 내비치는 등 동맹 간 연대를 통해 자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맞대응 차원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완료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동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 집중할 것을 천명하면서 미중 간 갈등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교 대외교류 부총장은 이날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왕이 부장의 방한에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큰 의미를 두고 싶진 않다. 원론적인 얘기가 오갈 것 같다”면서 “다만 우리 정부가 미국 위주의 외교에 쏠리는 현상은 중국에 이롭지 않기 때문에 그런 차원의 대비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관여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정 장관과의 만남에서도 왕이 부장은 미중 사이 균형외교를 강조하는 등 자국의 위상과 이익을 지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 연방 하원에서 정보동맹 ‘파이브아이즈’에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도 중국에는 압박 요소다. 미국 하원이 통과시킨 2022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개정안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된 위협’이라고 지적하며 ‘한국, 일본, 인도, 독일을 포함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중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일임에는 분명하다”면서 “왕이 부장이 우리 측에 직접적으로 아니면 우회적으로 언급할지 알 순 없지만, 아직 미 인준 등 절차가 남아있고 초기 단계라 자칫 부작용이 일수도 있는 만큼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 (출처: 중국 외교부)
중국 왕이 외교부장. (출처: 중국 외교부)

◆양국 관심사 북한… 中역할 주목

양국 간 공통된 관심사는 역시 북한 문제인데, 한반도 정세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각종 현안을 두고 한중이 각각 원하는 접촉면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아 북한 문제 협력 여부도 주고받기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특히 북미가 각각 자국 내 사정이 복잡해 신경쓸 여력이 없는 데다가 ‘대화 재개 조건’을 두고 어느 쪽도 물러설 마음이 없는 상황이라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을 통한 대북 관여 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도 중국과의 경쟁과 적대, 협력이라는 트리플 전략 속에서도 대북문제만큼은 중국의 역할론을 인정하고 있고, 우리 측도 경제 활성화와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선 중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정부가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중국의 역할론을 당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물론 중국도 이 같은 상황을 적극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지지를 보낼 수 있겠지만, 실제 나설지는 미지수다. 만일 중국이 협력한다면 북한이 대화 재개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은 있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지난달 27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보고서를 통해 “북한 영변에서 지난 7월 초 이후 냉각수 배출과 같은 5MW(메가와트) 원자로 재가동 징후가 포착됐다”고 밝혔는데, 북한이 향후 북미협상에서 영변 핵카드를 다시 꺼내들 수도 있는 모양새라 관련 논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 외교장관회담 전날에는 일본 도쿄에서 지난 6월 21일 서울에서 회동을 가진 지 약 3개월만에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가 성사돼 주목된다. 우리 정부가 북한 비핵화와 대북 인도적 지원 등에 대한 문제를 놓고 미국, 일본과 접촉한 뒤 중국과도 장관급 협의를 갖는다는 얘기가 된다.

문 센터장은 “우리 정부의 움직임을 북한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체가 대화 모멘텀으로 작동할 것이라고는 판단할 것 같진 않다”면서 “어제 열병식에서도 봤지만 당장은 내부 결속에 치중하고 있는 양상이라 한반도 정세가 대화국면으로 조성될 때까지는 현 상황으로 흘러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다람살라=AP/뉴시스]3일(현지시간)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인들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 반대 시위를 하면서 오륜에 다섯 개의 허수아비를 목매다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인종학살' 올림픽이라며 5개의 허수아비가 각각 티베트, 대만, 홍콩, 내몽골, 동투르키스탄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다람살라=AP/뉴시스]3일(현지시간)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인들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 반대 시위를 하면서 오륜에 다섯 개의 허수아비를 목매다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인종학살' 올림픽이라며 5개의 허수아비가 각각 티베트, 대만, 홍콩, 내몽골, 동투르키스탄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내년 올림픽에 文대통령 초청 가능성도

중국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통해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등 미국을 넘어 세계 제일의 패권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특히 시 주석이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종신 집권을 위한 우호적 여론을 조성한 뒤, 내년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이를 확정지으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미국, 유럽연합(EU) 등을 필두로 한 국제사회에서 신장‧위구르 문제 등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아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어 중국 측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왕이 부장의 방한 계기 우리 측에 내년도 올림픽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시 주석 방한 문제보다는 올림픽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하는 데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개연성이 커 보인다.

한중 양측은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는 대로 시 주석 방한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최근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에 방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일각에선 왕이 부장의 방한의 진짜 이유는 올림픽에 대한 협력에 더해 디지털 화폐(CBDC) 구축에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한중일 3국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동 디지털화폐를 만들자는 제안도 내놨다.

위안화를 국제화해 탈달러화를 가속화하겠다는 노림수인데, 미국이 이란 등 적대 국가를 대상으로 달러 거래를 끊는 제재를 강화하고 있어 중국이 달러화에 의존하지 않는 결제망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위안화의 본격적인 발행 시점은 내년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내년 올림픽에서 해외 선수들과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디지털 위안화 발행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외국인 선수들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올림픽 경기장과 선수촌 등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등 디지털 위안화를 해외에 선보이는 장으로 삼겠다는 목표다.

디지털 위안화는 결제 수단일 뿐 아니라 법정 디지털 화폐로 M1(협의통화)과 M2(광의통화)를 대체한다. 지폐나 동전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가치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등 민간이 발행한 가상자산과는 성격이 다르다.

신 센터장은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로 위안화 국제화에 나선다면 국제 금융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면서 “양측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왕이 부장이 선물보따리를 들고 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인 행보로 디지털화폐 시험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달러 패권을 무기로 하는 미국의 제재를 무디게 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38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제공: 청와대) ⓒ천지일보 2021.8.31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38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제공: 청와대) ⓒ천지일보 202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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