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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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은 8월 30일 아프가니스탄 철군 완료를 선언했다. 아프간을 손에 넣은 탈레반은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며 축포를 터뜨렸다. 2001년 9.11 테러로 시작된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만 20년을 앞둔 시점에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그간 미국을 비난해 온 중국과 러시아는 미군의 철수를 환영하기보다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미군의 철수 후 아프간 안팎에서 이슬람 테러단체들의 발호가 예상되고 그 여파로 인근 지역 정세가 불안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적극적이다. 이미 7월 28일 왕이 외교부장은 탈레반 대표단을 톈진으로 초청해 아프간 재건과 경제 발전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표했고 이에 탈레반은 “어떤 세력도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해를 끼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탈레반의 답변은 아프간에 은거하고 있는 위구르 독립운동 세력(East Turkestan Islamic Movement)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군의 철수가 완료된 8월 30일 중국의 주유엔 대표부 차석대사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미국이 아프간에 큰 재난을 불러일으키고 그냥 가버리면서 책임을 이웃 나라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중국이 그간 미국의 외국 분쟁 개입이나 미군 주둔을 제국주의적 행태라고 비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해온 중국은 향후 아프간 정세에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아프간이 중국 서북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접경하고 있고 양쪽 주민 모두 이슬람(수니파)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아프간 국내정세를 안정시키는 데 돈이 필요하나 미국이 아프간의 자금줄을 틀어막고 있어 중국의 지원을 받으려고 아프간 내 위구르인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아프간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고, 중국으로서는 섣불리 군사적 개입에 나섰다간 미국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으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탈레반의 협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또한, 탈레반이 협조한다고 해도 알카에다 및 IS 같은 세력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더욱이 그간의 탈레반의 행태를 보면 중국도 장기적으로는 이전의 다른 강대국처럼 탈레반에 농락당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내심 고심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이번 미군 철수의 배경에는 중국을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과 마찬가지로 탈레반을 테러단체로 지정했으나, 탈레반과 꾸준히 접촉을 유지해 왔다. 카불의 러시아대사관도 폐쇄 또는 이전하지 않고 계속 유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8월 24일 “모두가 모두를 상대로 싸우는 아프간 분쟁에 우리 군대를 투입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소련 시절 우리는 아프간 주둔 경험이 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러시아도 아프간 상황을 방관할 수만은 없다. 아프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러시아의 영향권이며 같은 이슬람권인 중앙아시아에 침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의 남부 국경지대에 불안 요인이 발생하고 나아가 러시아 내 이슬람계 자치 공화국들(체첸, 타타르스탄 등)이 동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비교해 위협이 곧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외부세력은 아프간의 안정과 재건을 지원하되 내정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상금 탈레반 정권을 승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무엇보다도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고 하나 아직 아프간 전역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현실을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은 아프간 상황을 주시하면서 역내 테러, 분리주의 및 극단주의에 대처하기 위해 중앙아 국가들과 더불어 2001년 결성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차원에서 공조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간의 혼란이 왜 염려스러운가? 테러 공격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정규군 간에 전선을 형성해 대치하고 싸우는 통상적인 전쟁 방식으로는 대응이 어렵다. 중국으로서는 바로 옆에 ‘바이러스 폭탄’이 터진 격이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이 위구르인들을 억압하고 있는 신장 지역은 ‘바이러스’가 날라 들어오면 테러가 심각한 수준으로 발발할 수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는 달리 소수민족에 대해 종교 및 문화 말살 정책을 펴고 있지는 않으나 분리주의 움직임의 불씨가 살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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