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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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가의 본고장 남원시에서는 매년 축제 때 ‘신관사또 부임행차’가 열린다. 탐관 변학도가 부임하면서 백성들에게 위엄을 과시하는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선두에는 대취타가 앞장서 행진곡을 울리며 각종 깃발이 나부낀다. 근엄한 부사는 전립차림으로 커다란 가마에 올라 앉아있다. 육방 아전과 권속, 꽃다운 관기들이 줄지어 따라간다. 고전 춘향전에 나오는 부임행차를 보자.

“…(전략) 오리정 당도허니 육방 관속이 다 나왔다.… 오십 명 통인들은 별련 앞의 배행 허고 / 육십 명 군로 사령 두 줄로 늘어서 떼 기러기 소리 허고/ 삼십 명 기생들은 가진 안장, 착전립, 쌍쌍이 늘어서 갖인 육각, 홍철릭 남전대 띠를 잡어 매고, 북장고 떡 궁 붙여/ 군악 젓대 피리소리 영소가 진동헌다. 수성장 하문이라!… (하략).”

정3품 남원부사의 행차가 이 정도였으니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정2품 감사들의 나들이는 어땠을까. 감사들에 대한 호칭은 순상 합하(巡相 閤下)라는 경어를 썼다. 다산 논총 ‘감사론’에 기록 된 행차모습은 그 기세가 대단했다.

“…(전략)… 감사는 쌍마가 끄는 교자(轎子)를 타고… 부(府) 2명, 사(史) 2명, 서(胥) 6명, 도(徒) 수십명, 하인과 심부름꾼과 졸복의 무리가 수십 수백 명이다.… 기마(騎馬)가 100필, 복마(卜馬)가 100필, 아름다운 의복을 입고 예쁘게 화장한 부인이 수십명이 그 뒤를 따른다. 화살을 짊어진 행렬의 맨 앞에 서는 비장(裨將)이 2명, 맨 뒤에 가는 사람이 3명, 따라가는 역관(驛館)이 1명, 말 타고 따라가는 향정관(鄕亭官)이 3명이다(하략)….”

서울 종로구 종로 1가~6가까지 이어진 뒷골목을 ‘피맛골’이라고 한다.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종로는 왕래하는 고관대작들이 많았다. 백성들이 행차하는 양반들을 피하기 위해 골목길로 다녔는데, ‘말을 피하는 길 피맛골(避馬谷)’이라는 뜻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고관들이 다니는 길을 걷다가 나리들에게 예를 차리지 못하면 육모방망이를 맞든지 관아에 끌려가 경(黥)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한국의 공직사회에 조선 시대의 고관 섬김 풍조가 존재하는 것인가. 얼마 전 한국에 온 아프가니스탄 특별 가족들이 머물게 될 숙소 앞에서 진행된 법무부 차관의 브리핑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보좌진이 무릎을 꿇고 법무부 차관에게 우산을 씌워준 사진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기자들의 요청으로 이런 장면이 연출 됐다는 옹호여론도 있다. 그러나 관료사회의 이런 도에 지나친 상사에 대한 섬김 자세는 지금 시대의 잣대로는 맞지 않는다. 보좌진이 우산을 받치기 전에 차관이 직접 한 손으로 우산을 받고 브리핑 하지 못했을까. 내재된 권위의식, 조선 사회 고관 예우 풍토가 청년들을 좌절시킨 결과로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마지막 미군 수송기에 제일 나중에 탑승한 군인은 철모를 쓴 크리스토퍼 도나휴 소장이었다. 부하장병들을 무사히 비행기에 태우고 자신은 제일 마지막에 올랐다. 이것이 진정한 상사정신이 아닌가. 얼마나 멋진 장군인가.

도나휴 소장의 자세와 무거운 책임감을 우리 고위 공직자들도 실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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