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성 운동가들이 탈레반 정권하에서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뉴시스)
3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성 운동가들이 탈레반 정권하에서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뉴시스)

여성 인권 시위 카불 확산

탈레반, 최루탄에 폭력진압

피투성이 된 여성 시위대

저항군과 대치도 계속돼

美 합참 “내전 가능성 있어”

[천지일보=이솜 기자]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으나 아프간 주민들을 통치하기에 큰 도전들이 남아있다. 바로 여성 인권 운동가와 저항군이다.

여성들은 아프간에서 권리 보장과 여성의 정부 참여를 요구하며 연일 시위에 나섰으며, 4일(현지시간)에도 카불의 거리를 용감하게 누볐다고 CNN 등 외신이 전했다. 아프간의 여성 운동가들은 지난 한 주 동안 전국적으로 최소 세 번의 소규모 시위를 벌였다. 수십명의 여성들은 지난 3일과 1일에도 각각 카불과 서부 헤라트에서 집회를 열었다.

◆“여성 인권 어딨나” 시위 확산

시위대는 각각의 집회에서 “여성의 지원 없이는 어떤 정부도 안정적일 수 없다” 등의 팻말을 들고 “두려워하지 마, 우리가 함께 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아프간 현지 톨로뉴스에 따르면 탈레반은 시위대의 대통령궁 행진을 막은 후 최루탄을 사용하는 등 폭력 진압에 나섰다.

톨로뉴스가 4일 공개한 동영상에는 탈레반 경비대와 여성 시위대 간의 대치 상황이 담겼다. 영상에서는 한 남성이 시위대에게 “당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영상에 끝날 무렵에는 한 운동가가 “왜 우리를 때리느냐”며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시위에 참석한 전직 공무원 소라야는 로이터통신에 “동료들과 함께 예전 정부청사 근처로 가서 시위를 하려고 했다”며 “그러나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테이저건으로 시위대를 때리고 최루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총기로 여성의 머리를 때렸고, 시위대는 피투성이가 됐다”며 “(폭력에 대해) 이유를 물을 사람도 없었다”고 전했다.

앞서 헤라트에서 시위를 주최한 여성 인권 운동가 사비라 타헤리(31)는 “2주 동안 집에서 울면서 지냈다”며 “이제 충분하다. 우리는 이 침묵을 깨야했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자마자 여성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상황에 진저리가 난 타헤리는 자신과 친구 5명과 함께 항의 시위에 참여하라는 전화를 돌렸다고 밝혔다.

탈레반 지도자들은 이 같은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SNS에서 공유되자 시위대를 비난했다. 무함마드 잘랄 문화위원장은 이번 시위를 두고 “문제를 일으키기 위한 의도적인 시도”라며 “이 사람들은 아프간의 0.1%도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여전히 정부 구성을 논의 중이지만 여성들에게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으며 또 일터를 떠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는 앞서 여성들이 사회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할 것이며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혀 온 탈레반의 약속과 상충한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탈레반의 움직임에 여성들은 대중 생활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지운 20년 전의 가혹한 정책으로 회귀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일부 아프간 여성들은 이미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실내에만 머무르고 있으며 일부 가족들은 여성 친척들을 위해 부르카를 구입하고 있다.

◆저항군-탈레반 각각 “우리가 승리”

한쪽에선 탈레반은 반갑지 않은 일종의 데자뷔에 직면했다.

지난 3일 밤 탈레반은 민족저항전선(NRF)을 진압하기 위해 판지시르 계곡으로 진격했다.

탈레반은 1996~2001년 아프간을 집권했을 당시 거듭된 시도에도 판지시르를 장악하지 못한 바 있다. 당시 저항세력은 1980년대 소련을 추방하는 데 일조한 ‘판지시르의 사자’ 또는 아프간의 ‘국부’로 불리는 고(故) 아흐메드 샤 마수드가 이끌었다. 현재 NRF의 수장은 그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32)다.

탈레반과 저항군 모두 판지시르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저항세력에 합류한 암룰라 살레 전 제1부통령은 저항군이 공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항복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살레 전 부통령은 이날 BBC에 “상황이 어렵다”며 “우리는 탈레반의 침략을 받았다. 그러나 저항군은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테러에 굴복하지도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탈레반의 승리에 대한 소문은 “근거가 없다”며 부인하면서도 탈레반이 전화, 인터넷, 전기 등을 차단해 계곡의 상황이 어렵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양측의 다른 주장으로 각자의 군사적 위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분석가들은 현재 저항군의 목표는 산사태가 발생해 군사작전을 할 수 없는 10월 말까지 탈레반을 저지하는 것으로, 이후 5개월 동안 시간을 벌어 무기를 재확보하고 외부의 도움을 받을 것이란 계획이다.

이날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탈레반과 저항군의 분쟁과 관련해 “군사적 추정으로는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탈레반이 권력을 강화하고 통치를 확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폭스뉴스에 말했다. 밀리 의장은 “만약 그렇게(통치 확립을) 할 수 없다면 향후 3년간 알카에다를 재건하거나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무수한 테러집단의 성장을 이끌 것 ”이라고 내전의 악영향을 전망했다.

한편 탈레반 지도부에 20년 동안 자금과 피난처를 제공한 파키스탄은 다시 한 번 탈레반에 손을 내밀었다. 파키스탄 정보국(ISI) 수장 파이즈 하미드는 이날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카불에 도착했다. 탈레반과 ISI는 양국의 안보, 경제, 무역 등에 대한 회담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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