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김덕수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지구상에서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아온 세월 중 가장 타락한 세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이 타락하고 정치가 부패할수록 공통된 현상이 있더군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정치에 지나친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누구나가 정치인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을 이장님, 연극하시던 탤런트, 건설회사 사장님까지 저마다 정치를 하시겠다고 뛰어드는 세상이 되어 버렸지요. 그 직책에 상응하는 인품과 역량이 구비되었다면 누가 비난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러워지기만 하니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정치는 말 그대로 삐뚤어진 사람을 바로잡아 다스린다는 뜻이 그 글자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스스로가 반듯해진 뒤에 그만한 인품과 덕량을 갖춘 사람이라야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품과 덕을 갖추지 않고 어떻게 타인과 세상을 감동시키며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만한 큰 인재가 어느 세상인들 없겠습니까마는 올바른 정치가 행해지려면 우선 먼저 교육이 제대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교육은 인재를 바르게 육성하는 것입니다. 그럼 인재를 올바르게 육성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인간이 이 우주의 정기와 이치를 머금어 태어났기에 우주의 원리대로 곧 천연성대로 기루어 내는 것, 이것이 곧 교육인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지금의 교육의 실태를 살펴보자면 그 근본은 망각하고 지엽말단, 곧 영어회화 잘하고 수학 잘하는 것으로 교육의 본령을 삼고 있습니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전도된 세상입니다. 그러면 올바른 교육은 누가 행할 수 있는 것일까요? 참다운 스승만이 교육을 제대로 일궈낼 수 있습니다. 스님, 선생님, 도사님, 목사님 등 모두에게 공통되는 글자가 스승 ‘師’ 자가 붙는다는 것입니다. 곧 모든 종교나 학문의 목적은 인간을 천연성대로 바르게 키워내서 영대를 밝히고 지혜롭게 하자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신성한 의무를 행하는 이들이 스승인 것입니다.

서전이나 예기를 인용할 것도 없이 참다운 스승은 우주의 이치를 몸으로 체득하고 천연성을 회복하여 그저 몸으로 솔선수범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 말없는 가운데 저절로 감화시키는 것이 스승의 몸가짐입니다. 그러한 스승님 문하에서 스승님과 함께 생활하면 (이것을 친자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들뜬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요. 마음이 안정되면 천리가 자명해져 실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생겨나요. 마음이 고요해지면 생활 속에서도 그저 공부 아닌 게 없습니다. 걸어도 공부요, 잠을 자도 공부요, 놀아도 공부요, 실수를 해도 공부가 되지요. 뭐니 뭐니 해도 제대로 된 스승이라면 그 목소리를 들을수록 듣는 이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줍니다.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는 것이죠.

이러한 교육은 지금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암흑기라도 여명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선각자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바로 이 교육이라야만 이 혼탁하고 전도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실로 세상을 바로세우는 데 가장 기초요, 토대가 되는 것이 교육이요, 스승들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천박한 자본주의에 경도되면서 올바른 가치관의 부재로 가정교육이 등한시 되더니 급기야 가정교육이 사라져 버렸고, 공교육은 그 당국자나 선생님들께서 스스로 그 신성한 의무를 방기하고 월급쟁이들로 전락한 지 오래됩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지 않았기에 지금의 말세적 혼란은 필연적 과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선생님들께서 그 인품이나 행동거지가 학생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무슨 교육이 행해지겠습니까? 불과 한 세대 전만해도 도처에 사명감을 가지신 참스승님들께서 계셨어요.

어떤 선생님들께서는 당신의 그 박봉을 쪼개어 없는 제자들 뒷바라지를 한 분들도 많으셨고요. 올바른 교육자라면 늘 제자들에게 더 나은 여건을 마련해 주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그 많은 월급도 부족하다고 학부모가 돈 봉투를 얼마나 많이 자주 가지고 들락거리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과 장래가 결정되는 세상이 되었어요. 어느 때부터인지 교직을 가장 안정된 직장으로 선호한다는군요. 당초에 교직에 몸담고서 사명감이 없이 월급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어찌 선생님으로 부를 수 있겠습니까? 월급쟁이지요.

더 가관인 것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아이들을 볼모로 부모님들 지갑에서 돈 빼가기에 혈안이 되어 있더군요. 저 때 묻지 않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심지어 대학에서는 자기가 가르친 제자가 자기보다 뛰어나면 그 대학 교수로 임용을 방해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요. 학교교육이 붕괴되어 너도나도 학원 교육에 열을 올리더니, 학부모가 몸을 팔아 자식 학원비를 대는 세상이 되었어요. 이러한 한심한 작태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리고 후세에게는 어떻게 설명하려는지요. 저 같은 사람도 오래전에 이야기 했습니다. 저 강남의 부동산 열병은 삼십년을 넘지 않을 거라고요.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주류계층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느냐?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천도는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제는 고급지식이나 정보가 어느 한 계층이나 집단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인간의 문명이 발전한다 해도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대자연의 섭리를 몸으로 체득한 자가 참 스승이요,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게 하는 삶이 곧 올바른 교육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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