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수승대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9.2
거창 수승대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9.2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경상북도 예천군의 명승지인 ‘선몽대(명승 제19호)’는 선경을 이룰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정자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인들의 자취가 깃들어 있는 전통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큰 경승지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이곳은 1563(조선 명종 18)년 퇴계 이황의 문하생인 우암(遇巖) 이열도(李閱道, 1538~1591)가 세운 정자로 밝혀졌으나, 실제로는 그의 부친인 이굉(李宏, 1515~1573)이 지었다는 사실이 최근 역사성 검토 결과 밝혔다.

2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명승으로 지정된 별서정원 ‘성락원(현재 서울 성북동 별서)’의 만든 이와 변화과정에 대한 역사성 논란 이후 역사성 전수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특히 명승 별서정원 22개소 중 예천 선몽대 일원을 비롯한 11개소 정원의 만든 이와 소유자, 정원의 변화과정, 정원 명칭의 유래 등을 고증했고, 이 과정에서 몇몇 정원의 지정가치와 역사성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새롭게 밝혀냈다.

먼저 예천 선몽대 일원을 포함해서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구미 채미정 등에 대한 정원 만든 이와 소유자를 새롭게 밝혀냈다.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은 그간 소유자가 불분명해 다양한 가설이 제시된 정원이었으나, 이번 역사성 검토를 통해 19세기 경화세족(京華世族)이었던 애사(靄士) 홍우길(洪祐吉, 1809~1890)이 백석동천 일대 백석실(白石室)을 소유한 사실을 밝혀냈다.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9.2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9.2

‘구미 채미정’은 야은 길재를 모시기 위해 조성된 정자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영조 44년(1768) 선산부사 민백종(閔百宗, 1712~1781)이 지역 유림들과 뜻을 모아 건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중수나 중건이 새롭게 확인된 사례는 순천 초연정 원림, 예천 초간정 원림 2개소였다. ‘순천 초연정 원림’은 헌종 2(1836)년 청류헌(聽流軒) 조진충(趙鎭忠, 1777~1837)이 초가로 지은 것을 그의 아들인 만회(晩悔) 조재호(趙在浩, 1808~1882)가 고종 원년인 1864년에 기와지붕으로 중건한 사실이 확인됐다.

‘예천 초간정 원림’은 선조 15년(1582)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정자를 지은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죽소(竹所) 권별(權鼈)이 인조 4년(1626) 중수한 뒤에도 화재로 불에 타 그대로 둔 것을 영조 17년(1741) 후손인 권봉의(權鳳儀)가 기존의 터가 좋지 않다고 여겨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수한 것이 전해지고 있다.

정원의 유래가 새롭게 확인된 곳은 담양 소쇄원, 거창 수승대, 담양 식영정 일원 등 3개소다.

담양 소쇄원은 만든 이인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 ‘소쇄’라는 이름은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3)이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다.

거창 ‘수승대’의 이름은 퇴계 이황의 제명시(수승대에 부치다, 寄題搜勝臺)를 따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수승대에 앞서 ‘수송대(愁送臺)’라는 명칭도 있었다. 이 명칭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삼국 시대 옛 신라와 백제의 사신이 이곳에서 송별할 때마다 근심을 이기지 못해 수송이라 일컬었다는 설과 뛰어난 경치가 근심을 잊게 한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이에 조선 시대에는 수승대와 수송대가 혼용돼 불리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오랫동안 불려왔던 명칭의 연원을 확인함에 따라 지정명칭을 개칭 이전의 원래 명칭인 ‘수송대’로 변경하기로 했다.

또한 담양 식영정 일원은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이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을 위해 지어준 정자로 알려져 있으나, 김성원이 정자를 짓고 그의 장인인 임억령이 ‘식영(息影)’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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