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성철스님이 숨을 거두기 직전 남긴 임종게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사진은 경남 합천 해인사 경내에 마련된 성철스님의 사리탑비. (출처: 뉴시스)
1993년 성철스님이 숨을 거두기 직전 남긴 임종게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사진은 경남 합천 해인사 경내에 마련된 성철스님의 사리탑비. (출처: 뉴시스)

“나의 일생 허깨비 일 같아”
생전 수행 통해 얻은 깨달음
사람들 삶에 영향 끼치기도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최근 들어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스님들의 입적(入寂) 소식이 많이 잇따랐다. 지난달 29일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의 대표적인 선사였던 고우스님이 입적했으며, 8월에는 한국불교태고종 제24대 총무원장을 지낸 인공스님이, 7월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불교계 개혁의 상징이자 조계종단의 큰 어른인 송월주스님이 입적했다.

고승들이 입적할 때는 생전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남기는데, 이를 임종게(臨終偈)라고 한다. 따로 임종게를 남기지 않은 스님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기는 같은 말과 글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또 이들의 깨달음의 경계가 고스란히 깃든 임종게는 사람들의 삶에 교훈으로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에 고승들이 삶의 끝자락에서 남긴 유언과도 같은 임종게를 재조명해봤다.

◆스님들 생전 ‘임종게’ 현재까지 회자돼

조계종 수좌(선승)들의 맏형으로 불리는 고우스님은 통상 고승들이 남기는 임종게 대신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간다’고 하라”고 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인 영산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이바지했던 인공스님은 입적하기 전 ‘부처님 이후로 나는 몇 세대가 될 것이며 달마는 무엇 때문에 동쪽으로 왔다가 서쪽으로 갔는가, 어려서 머리 깎아 늙은 중이 이제 장삼을 벗으니 무엇이 그림자 밟아 성인자리 오르려나’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올 초 3월 23일 쌍계사에서 입적한 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을 지낸 고산당 혜원(慧元) 대종사(고산스님)는 입적하기 전 ‘봄이 오니 만물은 살아 약동하는데 가을이 오면 거두어들여 다음 시기를 기다리네. 나의 일생은 허깨비 일과 같아서 오늘 아침에 거두어들여 옛 고향으로 돌아가도다’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져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는 임종게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종교를 뛰어넘어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큰 어른이었던 법정스님은 입적 직전 임종게를 남기라는 상좌스님의 말에 “간다, 봐라”고 ‘무소유의 스님’다운 마지막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조 수행자였던 고한 희언스님은 “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 지옥의 앙금만 만들고 가네. 내 뼈와 살을 저 숲속에 버려 산 짐승들 먹이가 되게 하라”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성철스님 ‘지옥’ 발언에 불교-개신교 화들짝

스님들이 남긴 임종게를 제각기 해석하면서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다.

1993년 성철스님이 숨을 거두기 직전 남긴 말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종단의 정신적 지주)을 지낸 성철스님은 “한평생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은 하늘에 넘치네, 산 채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붉은 해는 푸른 산에 걸렸네”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이에 대해 일부 기독교에서는 ‘한평생 사람들을 속인’ 당사자를 성철스님이라고 보고 성철스님이 지옥에 떨어졌다며 개종(改宗: 믿던 종교를 바꾸어 다른 종교를 믿음)을 강요해 논란이 됐다.

이 같은 공격적인 선교방식에 프랑스 가톨릭수도원 유학파 향적스님은 깨달음을 비롯한 부처의 가르침이 잘못 전해지면서 불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성철스님의 임종게를 해석했다.

스님은 자신이 펴낸 선승들의 선시(禪詩) 해설집에서 “생불이라 칭송받던 스님이 자신의 삶을 이렇게 한탄했다”며 “낮춤으로써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가르침, 인간의 본질을 깨친 자만이 뉘우치고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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