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릴 대구스타디움 경기장 전경 (사진제공: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2009년 포기하고 2011년 신청 단 한 번 만에 성공
평창엔 악재로 작용, 희비 엇갈려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하기에 앞서 대구가 먼저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하면서 한국은 세계 7번째로 3대 빅 스포츠 이벤트인 하계올림픽, 월드컵축구, 세계육상까지 모두 개최하는 ‘트리플 크라운’ 달성의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대구의 유치 도전기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대구는 자크 로게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IAAF(국제육상경기연맹) 집행이사 등 국제스포츠 인사들이 경기장 시설과 대회운영 능력을 높이 평가하자, 메인 경기장으로 사용했던 대구스타디움에서의 세계육상선수권 유치를 고려하게 됐고, 이때부터 야심찬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특히 대구스타디움은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등 국제스포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 2003년 IAAF로부터 1등급 경기장으로 공인을 받아 유치에 자신이 있었다.

대구시는 2004년 1월 26일 IAAF에 유치의향서를 제출하게 됐고, IAAF가 접수를 마감한 결과, 대구를 포함해 무려 8개 도시가 유치의향서를 제출했다. 이로 인해 IAAF 집행이사회는 유치 과열 경쟁 등을 우려해 대구를 포함한 일부 도시들에게는 유치를 철회할 것을 우회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구는 2007년이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대륙별 안배상의 문제로 사실상 유치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인식해 2009년 대회 유치신청을 포기하는 대신 2011년 대회 유치를 추진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시 2011년 대회 유치를 목표로 대구는 범정부 차원의 유치위원회를 2005년 6월 설립하게 되며, 그해부터 매년 대구국제육상대회를 실시함으로써 IAAF에 우수한 개최여건과 육상발전에 대한 의지 등을 알렸다.

이후 2006년 4월 대구는 기다려왔던 2011년 대회유치의향서를 접수했고, 유치의향서를 제출한 9개국 중 모스크바(러시아), 브리즈번(호주), 고텐베르그(스웨덴) 도시와 함께 최종 후보도시로 선정된다.

대구는 이때부터 유치 성공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고, 특히 유치에 있어서 약점으로 지적됐던 관중 확보문제를 불식시키기 위해 서명 운동을 벌였고, 국민들의 육상 관심 부족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매년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를 통해 유치를 홍보했다.

또한 당시 육상 저변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IAAF 내부 분위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육상 약체국이란 한국의 약점을 오히려 대회 유치를 통한 한국의 육상 발전이 곧 아시아 육상 발전과 세계 육상 발전에 기여한다는 ‘Carrying the baton For World Athletics’ 메시지를 슬로건이자 유치 명분으로 내세웠다.

2007년 2월 실사평가에서도 대구 시민들이 뜨거운 유치 열기를 보여줌으로써 대구 개최 가능성은 점점 커져 갔고, 호주 브리즈번과 2파전 양상으로 흘렀다.

결국 2007년 3월 27일 운명의 날. 케냐 뭄바사에서 열린 집행이사회에서 투표를 통해 2011년 개최지로 ‘대구’가 호명되면서 3년 반 정도의 짧고도 긴 유치도전기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특히 대구가 승전보를 울린 데 이어 한 달 후인 4월 17일에는 인천이 인도 뉴델리를 제치고 아시안게임을 확정하는 등 한국은 겹경사를 누렸으나, 반면 이것이 평창에겐 ‘한 나라에 국제대회가 편중되는 것을 기피’하는 IOC의 성향에 악재로 작용하면서 그해 7월 소치에 밀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가 좌절돼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다행히 평창은 4년을 더 기다린 끝에 이달 초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쾌거를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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